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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Feb 29. 2024

알리바이

퇴고 없이 단번에 쓰는 글

두 사람이 사귈 리 없잖아 손 위에 손이 올라 탄 모습만 보더라도

짝짓기에 실패한 노묘처럼 다른 혀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처음부터

이야기를 들어볼까


점쟁이는 알이 꽉 찬 암게

좁은 틈을 지날 때마다 떨어뜨릴까 앞으로 걷지 못하고

주워 담으면 이야기가 되니

탁자 위에는 동사 빠진 부사로 그득하다


나부터 이야기를 할게

정신이 든 건 공사 소리로 시끄러운 어느 콘크리트 바닥 위

사십 분 뒤에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야 백화점 지하 일 층인 것을 깨닫지만 거기 있는 누구도 알지 못해 불이 켜지지 않아

사람들은 서로의 입김으로 기억해 그대의 목에서는 푸른 밤바다가 나옵니다 당신의 입김은 이곳처럼 불이 꺼져 있군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 도무지 알 턱이 없지만

우리는 계단보다 비상구를 먼저 찾는다

참 웃겨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말이에요 미간을 찌푸리면 뭐라도 보이는 것처럼 입김도 안 나는데 천장에 달린 에어컨에서 소리가 난들 걔가 말을 하겠어요 눈물을 찔끔 흘리겠어요

나는 택도 없는 짓은 안 해요 혼자서 대화도 안 하고 노래도 안 불러요

그러니

어째서

그리하여

도무지

아무튼 초록 불빛을 따라가요 저길 지나면 다 잊는 거예요 이곳에서 본 입김도 들었던 노래도

베젤 위에는 바구니가 그려져 있고 바구니에서 흘러나온 혹은 굴러 나온 과일들이 있고 바구니 안에는 결국 마침내


너는 이제 와서

내가 외국인이길 바라고 있지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만 해도

짧은 낱말만 내뱉으면서 이따금 바닥에 침도 막 뱉으면서

하지만 안심해 나는 알리바이의 귀재

사라지고 싶을 때 사라지게 해 줄 수 있다 조건은 하나 아무것도 흘리지 않을 것

입가에 묻은 빨간 소스처럼 붉은 흔적만 남기고 너를 먼 곳으로

보내줄 수 있지 감쪽같이


중성화 고양이를 찾는 트럭이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간다

도망친 것들은 아래로 흐르고

언젠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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