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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Jun 11. 2019

답하지 못한 질문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난 그 후


너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누구나 나에게 너를 묻는 시간이었다.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은 예외 없이 우리 사이를 관통했다.



네가 없는 시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한참을 걸었다. 집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길만을 택했다. 듣고 있던 노래는 지겨워졌고, 아무리 걸어도 좀처럼 멀어지지 않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나는 자연스럽게 네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한겨울 길 한복판에서 얼음처럼 멈춰버린 여자를 보았다면 아마 나였을 것이다. 나는 어떤 노래도 고를 수가 없었으므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수차례 바뀔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좋아하는 영화도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까. 굳이 네가 가장 좋아하는 무엇을 박제해 기억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너의 순간순간을 함께 했고, 서로가 놓친 서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함께 한 순간에 가장 좋아했던 것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주석을 달아보아도… 걷어 찰 수 있다면 나를 우주 밖으로 잠시 날려버리고 싶었다. 상사의 질문에는 실컷 대답을 해놓고, 정작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는 입술을 꾹 깨무는 것뿐이라니…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정말 알아야 하는 걸 알고는 있는지, 나는 어떤 여자친구였을지, 아니 애초에 나는 어떤 인간인지... 나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냈지만 바보같이 이 역시 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영영 답을 알 수 없을 질문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인정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점점 휘발될 기억들은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 분명했다. 휘청이는 그림자가 나를 따랐다.



기도하는 밤들이었다. 내 이름보다는 네 이름을 먼저 떠올렸다. 순서를 정할 수 있다면, 나보다는 너에게 먼저 평화를 가져다 달라고 마음으로 말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너와 보낸 시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준 건 아니었을까.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던 누군가의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알 수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눈물이 고이면 눈을 떴다.



지금 듣는 음악 cigarettes after sex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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