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를 출발한 지 버스는 6시간 만에 세계의 3대 미항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밤 11시, 리우의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 보사노바의 부드러운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택시를 탔다. 리우도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다. 나는 라파스의 택시 강도를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라디오 택시를 불러 탔다. 털릴 것도 없으니 부담이 없었다.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숙소를 찾아갔다. 버스는 계속 이어지는 해변을 따라 달려가다가 이윽고 코파카바나의 해변에 도착했다. 늦은 밤인데도 해변에는 산책을 하는 아베크족들이 하얀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 해변의 카페에서는 보사노바의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은 밤을 잊은 듯 모래사장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황한 불빛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잔잔하게 찰랑거리고 있는 밤바다는 바다라기보다는 '1월의 강'이란 말이 딱 어울려 보였다.
우리가 찾아간 호스텔은 체 라가르토 호스텔(Che Lagarto Hostel)로 하룻밤에 30 헤알(약 1만 원)의 저렴한 도미토리 룸(12 베드 혼성)이었다. 코르코바도 해변 가까운 곳에 있어 위치는 좋았지만 직원이 불친절했다. 침대나 화장실의 청결도가 썩 좋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이라 이곳에서 하룻밤만 자고 내일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짐을 풀고 밖에 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코르코바도 언덕에 서 있는 거대한 그리스도 상이 조명 빛을 받으며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양팔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예수상을 보니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난의 예수는 십자가를 드리우며 어두운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먼 길을 온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성경구절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지만 호스텔은 젊은이들로 시끄러웠다. 허지만 코르코바도 언덕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상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리우는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산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아름답고 좋은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다. 분기탱천하는 화강암의 봉우리와 봉우리가 서로 다투며 생기를 모아주는 것 같았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항구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공식 명칭은 '리우데자네이루:산과 바다 사이의 카리오카 경관( Rio de Janeiro: Carioca Landscapes between the Mountain and the Sea)'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Rio-강 de Janeiro-일월)는 '1월의 강'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1502년 1월 1일, 아메리코 베스푸치가 처음으로 리우 항의 구아나바라 만 깊숙이 상륙을 하였을 때에 잔잔한 해안이 마치 강처럼 보였다. 그는 바다를 강이라고 착각을 하고 그곳을 '1월의 강'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이름만큼이나 오묘한 매혹이 풍겨 나는 곳이 리우데자네이루다. 작열하는 태양과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숨이 막힐 듯 뜨거운 매력을 지닌 리우는 모든 남미 여행자들의 로망이 절정을 이루는 곳이다. 화려한 카니발, 사치스러운 비치 리조트, 완전무결한 즐거움과 역동적 놀이의 천재인 카리오카(Carioca, 리우에서 태어난 사람들)들의 유희… 리우는 삼바와 보사노바의 발상지답게 호화찬란함과 감미로움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항구다.
코르코바도 산정에 올라서면 리우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360도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세계 3대 미항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시드니, 나폴리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아름답다. 코르코바도 산을 중심으로 팡데아수카르를 비롯하여 멀리 우뚝우뚝 솟아있는 럭비공 같은 수없이 많은 암봉들이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연출하며 숨이 멎는 듯 다가온다.
그 암봉들 모래사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도심에 바로 접한 플라멩코에서부터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레브롱, 상콘라두 해안까지 설탕처럼 하얀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하얀 모래사장의 길이는 무려 60킬로미터에 달한다.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햇빛 아래 쪽빛 바다가 더욱 푸르게 보이고, 해변엔 부자들의 삶이, 반대편엔 가난한 자들의 삶이 이어진다. 카리오카들의 삶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낙천적이다. 강열한 햇빛은 이들에게 우울과 염세라는 곰팡이가 깃들 기회를 주지 않는 모양이다.
카니발을 즐길 돈이 없으면 마지막 남은 귀중품이나 가구를 팔아서라도 화끈하게 카니발을 즐긴다. 카니발을 즐긴 후에는 맨바닥에라도 몸을 던져 잠들 수 있는 태평함을 유지하는 것이 카리오카들의 삶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대도시는 극심한 강도 피해로 몸살을 않고 있다. 개인의 총기 소유가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는 이곳에서는 시내 중심가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대상으로 권총강도가 빈발하고 있다. 백주 대로에서 부티 나는 차를 털고, 대통령 부인의 승용차를 훔치고 대법원장의 집을 털기도 한다.
희한한 행각을 벌이는 강도들도 있다. 젖먹이 아기가 있는 집을 털고 나오던 강도는 강탈한 돈의 일부를 우유 값을 하라고 마치 선심을 쓰듯 엄마에게 주기도 하고, 강도를 당한 자가 점심 값이 없다고 하면 선 듯 점심 값을 내주기도 한다. 운전수를 권총으로 위협을 하여 돈을 뺏은 뒤 불과 5분 만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권총 자살을 한 강도도 있다고 한다.
약 2억 명의 인구 중 5천만 명이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니 브라질엔 자연히 강도와 도둑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돈이 궁색한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강도나 도둑으로 돌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강도나 도둑질이 단지 '많이 가진 사람'의 재물을 '나눠 갖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고 화려하기만 한 리우데자네이루. 예수가 팔을 벌려 바라보고 있는 앞면의 해변엔 부자들이 떵떵 거리며 살고 있는가 하면, 그 뒷면의 산기슭엔 빈민의 판자촌 '파벨라'가 산재해 있다. 부자들은 방탄차를 타고 가면서 강도들을 두려워하고, 강도들은 권총으로 부자들을 털면서 혹시 잡혀서 감옥에 갈 것을 두려워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그리스도 상의 앞면과 뒷면… 이곳 안개가 끼었다가 사라지곤 하는 리우의 코르코바두 언덕에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모든 것들이 럭비공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다. 삶은 360도의 파노라마 같은 것일까? 도미토리 룸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를 1층 베드에 눕게하고, 나는 2층 베드로 올라갔다. 2층 배드에서 나는 가부좌를 틀고 잠시 명상에 들었다가 곧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를 가까운 밤부 리오 호스텔(Bamboo Rio Hostel)로 옮겼다. 1인당 60 헤알로 어제보다 배가 비쌌지만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친절하고 시설도 좋았다. 방을 배정받아 배낭을 내려놓은 뒤 우리는 곧바로 코르코바두 언덕으로 갔다. 코르코바두 언덕의 그리스도 상은 리우에서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이었다.
톱니바퀴를 물고 덜커덩거리며 힘겹게 올라가는 케이블카 레일 양쪽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열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긴 숲 터널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해발 710미터의 코르코바두 산정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과 안개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지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건만 양팔을 벌리고 나를 반겨줄 줄만 알았던 그리스도 상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자. 기다리면 보여주리라." 정말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윽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그리스도가 부활하듯 하늘에서 안개를 타고 내려왔다. 높이 38미터, 팔의 길이 28미터, 무게 1,145톤. 브라질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포르투갈이 선물을 했다는 그리스도 상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다. 그리스도는 주름진 백색의 성의 자락 위로 두 팔을 활짝 펼쳐 든 채, 다소 고개를 수그리고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수평으로 펼쳐 든 두 팔은 무한히 뻗어나갈 기세다. 양팔 위로 아득히 보이는 얼굴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려는 듯 독생자의 독특한 외로움이 배어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그리스도는 침묵 속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스라이 보이는, 고뇌에 찬 얼굴은 백인도, 흑인도, 인디오도 아닌, 온 세상 인간의 혼혈로 융합된 묘한 모습이다. 혼혈로 이루어진 브라질리언을 닮은 모습이랄까? 끊임없이 흘러가는 안개와 구름 속에 모습을 나타냈다가 사라지곤 하는 구세주의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져 보였다. 고뇌, 슬픔, 우수, 자애, 연민, 사랑, 외로움…. 그것은 보는 자들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탓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기쁨과 환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높이 710미터의 암봉에 서 있는 그리스도 상은 밤과 낮,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햇빛을 받을 때와 달빛을 받을 때, 계절에 따라 천의 얼굴로 변한다. 때로는 부활의 모습으로, 때로는 외로운 독생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기적을 행하는 구세주 같은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굽어보는 산 아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각자 다르다. 불빛이 호화로운 부촌과 흐릿하게 보이는 가난한 자들의 달동네까지…
멀리서 바라보면 코르코바두 산 뾰쪽한 바위 위에 선 그리스도 상은 마치 리우데자네이루의 모든 것들이 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사방을 에워싸고 그리스도를 받들고 있다. 그리스도는 죄진 자들에게 벌을 내리듯 암봉 위에서 리우데자네이루 도시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밤이 오고 지상에 어두움이 내리면 라이트의 조명을 받은 그리스도상은 어두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다. 그리스도가 승천을 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부활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모습이다. 어두운 창공, 조명 속에 하얗게 드러나는 그리스도 상은 차라리 하나의 거대한 십자가다. 낮에는 죄진 자들을 징벌하고, 밤에는 이 세상의 모든 죄진 자들을 구하려는 듯 십자가를 진 구세주로 부활하여 땅으로 강림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스도 상은 밤과 낮,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