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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06. 2020

당신이 첫 키스는 언제였나요?

호주 아웃백 사파리-울루루로 가는 길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였나요?


아웃 백 사파리 투어는 이른 아침 6시 30분에 앨리스 스프링스를 출발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울루루까지는 441km로 서울에서 목포 정도 가는 꾀나 먼 거리이다. 호스텔까지 픽업을 나온 자동차는 15인승 캠핑카였다. 캠핑카의 뒤에는 작은 트레일러가 붙어 있었는데, 여행자들의 짐과 캠핑에 필요한 음식과 텐트 등 짐을 싣는 역할을 했다. 


아내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캠핑카에 올랐다. 캠핑카에는 12명의 다국적 여행자들이 합류하였다. 남자가 4명 여자가 8명으로 대부분 20~3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여행자들은 주로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이용하여 유학을 하거나 여행을 온 배낭여행자들이다. 그중에 우리 부부가 가장 연장자였다. 나는 이런 여행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자유 분망 하고, 젊음의 기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여행비용도 아주 저렴하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은 주로 스웨덴, 스페인, 영국, 캐나다에서 온 젊은이 들이었는데, 세 명의 한국인 여자 유학생들이 함께 했다. 


2박 3일간의 울루루 아웃 백 사파리 투어는 앨리스 스프링스-사막 낙타투어-울루루-카타추타국립공원-킹스캐니언 순으로 되어있었다. 사파리(Safari)란 어원은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란 뜻은 가진 단어인데, 오늘날에는 변형되어 자동차를 타고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아웃백 사파리는 부시 캠프(Bush Camp) 텐트에서 야영을 하고, 미리 준비한 음식 재료를 여행 팀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손수 지어먹는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붉은 내륙을 부시맨처럼 부시워킹을 하며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을 몸소 체험하는 코스이다. 


울루루로 가는 길


앨리스 스프링스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글렘은 자동차를 목장처럼 생긴 곳에 멈추었다. "자, 여기서 낙타를 잠시 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파리의 첫 일정으로 핀든 카멜 트랙(Pyindan Camel Tracks)에서 낙타를 타는 체험으로 시작되었다. 낙타는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 호주의 거친 사막을 오갔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핀든 카멜 트랙은 낙타를 타고 맥도넬 산맥을 오가는 긴 코스도 있었다. 허지만 우리가 체험하는 낙타 타기는 울타리 안에서 트랙을 돌아오는 짧은 코스였다. 낙타를 타는 기분은 언제나 묘하다. 으르렁 거리며 괴성을 지르는 높은 낙타 등에 앉아 있으면 머나먼 과거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는 느낌이 든다. 

핀든 카멜 트랙 낙타 체험

운전사 겸 가이드는 글렘(Glemm)이라고 부르는 30대의 백인 남자다. 그는 놀랍게도 일정 내내 만능 엔터테이너 재능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울루루까지는 5시간 이상 걸려요.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그러니 여러분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낙타 타기 체험을 하고 난 후 다시 울루루를 향하여 출발을 하며 글렘은 여행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을 소개하도록 하였다. 여행자들이 반드시 운전석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들고 소개를 하도록 하고, 경청을 하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무엇이든지 질문을 하라고 했다. 말하자면 여행자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일종의 청문회를 열듯 질문을 주고받아 소통을 하게 함으로써 서로가 친숙 해지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청문회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글렘의 재치가 워낙 능숙하여 분위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흥미가 진진했다. 첫 번째로 스웨덴에서 온 20대 후반의 호주 유학생인 모니카가 자신을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자리로 들어가려고 하자 글렘은 그대로 서 있게 하고는 재빨리 짓궂은 질문을 퍼부었다.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였지요?"

"나의 첫 키스요? 그걸 지금 말해야 하나요? 호호호.”

“당장 말하지 않으면 저 펄펄 끓는 사막에 내려놓고 말 거요. 크크크.”

“아이고, 제발 절 사막에는 내려놓지 마세요.”

“그럼 다시 질문을 할게요.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였지요?”

“호호. 꼼짝없이 밝혀야겠군요. 정확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저의 첫 키스는 아마 10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요.”

“누구랑, 어디서 했지요?”

“그러니까 그게… 고등학교 남자 친구랑 극장에서 했던 것 같아요.”

"첫 키스는 달콤했나요?"

“갑자기 당한 거라서 뭔지 잘 몰랐지만 꽤 흥분은 되었던 같아요.”

“그럼, 마지막 키스는 언제 했지요?”

“흐음, 저는 어제도 키스를 했고요. 나의 사랑 키스는 2주 전이었어요. 호호호."

“사랑 키스란 구체적으로 뭘 의미 하지요?”

“그건 각자 상상에 맡기겠어요. 호호호.”

“고마워요. 모니카. 자 이런 식으로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겁니다. 질문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다. 다음엔 누구 차례지요?”


모니카는 전혀 내숭을 떨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키스 경험을 스스럼없이 얘기를 했다. 비교적 성이 자유롭게 개방된 나라인 스웨덴인답게 그녀는 활달했다. 모니카의 솔직한 답변에 흥미를 느낀 12명의 여행자들은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와서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리고 청중들은 점점 더 호되고 열띤 청문회(?)를 퍼부었다. 맨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는데 글렘은 유일한 커플로 참여한 우리 부부에게 함께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피해갈  수 없는 청문회였다. 먼저 일본에서 온 여행자가 물었다.


"두 분은 결혼을 한지 몇 년이나 되었지요?"

"어디보자, 올해로 벌써 30년이나 되었네요."

"와우~ 그렇게 오래되었어요? 신혼부부처럼 젊어 보이는데요. 올해 몇 살인데요?"

"허허, 감사합니다. 55살이나 되었답니다."
"에그머니, 우리 아빠 나이네요. 내가 보기엔 30대로 밖에 안보이는데요? 그런데 두 분 어떻게 만났지요?"

"아내의 친척이 소개를 해주어서 만났어요. 한국에서는 이를 중매(matchmaking)라고 해요."

"두 분의 첫 키스는 언제 어디서 했지요?"

"하하, 그러니까 그게... 약혼식을 올리고 난 후,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나서 영화를  보다가..."

"재미있군요. 어떤 영화였지요?"

"아마 '어둠 속에 벨리 울릴 때'라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어둠 속에 벨리 울릴 때 키스를 했눅요. 호호호."

"지금 아이들은 몇이나 되지요?"

"딸 만 둘이랍니다. 아마 여러분 나이와 비슷할 겁니다. 하하."


뭐, 이런 식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청문회는 끝없이 이어졌다.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국제적으로 가장 공통적인 관심사이자 흥미롭고 부담이 없는 이야기 같다. 청문회 덕분에 덥고 지루한 사막의 드라이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를 만큼 금방 지나갔다.


두 개의 고환을 가진 가시 도마뱀


울루루로 가는 도중에 처음 만난 동물은 '가시 악마 (Thorny Devil)'이라고 불리는 '가시 도마뱀'이었다. 온몸에 가시가 돋아있는 가시 도마뱀은 아웃 백의 붉은 바위와 황토 색깔로 얼룩이 져 있다. 눈알은 톡 튀어나왔으며, 길이는 약 20cm 정도 되어 보였다. 귀여운 아기 악어처럼 생겼다고나 할까? 녀석은 과일향기를 좋아하는지 과일상자 안에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글렘은 녀석을 손으로 잡더니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요리저리 살펴봤다.


사막에서 만난 가시 도마뱀


"아유, 깜찍하기도 해라!"

"녀석의 패션이 장난이 아니네!"

"글램, 그 도마뱀에 독이 없나요?"

"이 놈은 특별한 독은 없어요. 독 대신 온몸의 가시로 자신을  방어하지요."


가시 도마뱀을 둘러싸고 저마다 한 마디씩 질문을 퍼부어 댔다. 글렘의 설명에 의하면, 녀석은 몸으로 물을 흡수하여 비늘 모양의 피부 속 공간에다 저장을 한단다. 등위에 떨어지는 아침이슬이나 빗방울까지도 몸의 돌기에 물을 흡수하여 저장해 두었다가 모세관을 통하여 위장으로 전달하는데, 모세관으로 빨아들인 물이 위장에 전달되는 시간 13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주로 흰개미를 잡아먹고 사는데 개미를 먹을 때는 한 번에 한 마리씩 먹는다. 녀석은 한 끼 식사로 수백 마리의 개미를 먹어치우기도 하며, 분당 약 45마리의 개미를 먹는다는 것. 수컷은 두 개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데, 각 생식기는 고환이 따로 있어 그 둘 중에서 사용하는 생식기는 정해져 있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다른 생식기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히야, 고놈 참 기특하게 행동을 하는군요."

"테스티스(고환)가 두 개를 가지고 있다니… 녀석은 참 편리하겠네요."

"그렇지요. 녀석은 위협을 받으면 머리를 앞다리 사이로 감추는 습성이 있어요. 특히 그 생김새가 특이하여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공학자들도 관심이 많아요."

"공학자들이요?"

"말하자면 녀석을 보고 공학 디자인에 활용을 한다는 거죠."

"아하! 정말 멋진 디자인이 되겠군요."

“어쩐지 색깔이 패션너블 하더라.”


야생동물에 대한 글렘은 상식은 대단했다. 그는 아웃 백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생태계를 보다 상세하게 알려주기 위하여 꾸준히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 황량한 사막에서 야생의 도마뱀이 생존하는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 할지라도 모든 생물들은 각자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우리 인간도 만찬가지가 아닐까? 글렘이 가시 도마뱀을  땅 위에 내려놓자 녀석은 위풍당당하게 머리와 꼬리를 쳐들고 유유히 사라져 갔다. “인간들아, 날 제발 그만 귀찮게 하지 말아 다오” 녀석은 우리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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