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준비된 간병인이었다!
삶에는 예고 없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이가 병에 쓰러지고, 어느 날 갑자기 병실이라는 낯선 우주의 문턱을 넘게 될 때,
누군가는 삶을, 누군가는 직업과 꿈을, 또 누군가는 가정을 걸고 간병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나 또한 그 터널 속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어두운 통로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간병비는 단지 하루에 15만 원, 20만 원씩 간병인에게 건네는 돈만이 아니다.
요양병원, 재활병원, 요양보호사, 기저귀, 휠체어, 소모품,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병원 왕복 구급차 비용까지… 숫자로 계산되는 항목 뒤에는 돈으로는 도저히 셈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와 눈물의 잔고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가족인데.”
맞는 말이다. 가족이니까,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그것이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당해야만 하는 짐인가?
지금, 이 순간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간병비로 가계가 무너지고 있다.
퇴직하고, 퇴직금으로 몇 달을 버티다가
카드빚, 대출, 집까지 내놓고 나면
남는 것은 빈 통장, 지친 몸, 그리고 더 깊어진 절망뿐이다.
나는 준비된 간병인이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렇게 되어왔는지도 모른다.
17년 전, 아내가 심장이식을 받았을 때도
나는 무균실에서 매일 소독복을 갈아입으며 그녀 곁을 지켰다.
그 절박한 시간, 아내를 다른 누구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사랑과 정성, 눈물과 기도로 간병을 이어갔고,
그 덕에 아내는 생명을 건졌다.
그 이후 나는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단지 자격을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을 위한 공부였고,
간병의 길 위에서 나 자신을 다지는 간절한 명상과 수행이기도 했다.
지금 아내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장기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간병인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이제는 나도 간병을 받아야 할 나이다.
힘겹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힘겹다.
우리나라의 간병비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와상 여부, 인지능력, 신체조건에 따라 하루 15~20만 원,
한 달이면 450~600만 원에 이른다. 거기에 간병 소모품까지 더하면 부담은 점점 무거워진다.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더 많이 드는 기형적 구조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말한다.
“간병은 개인의 몫이다.”라고
세계 경제대국 10위, 복지국가를 자처하면서도, 간병의 무게는 가족에게 지운다.
그러나 간병은 사랑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버거운 무게다.
이미 너무 많은 가정이 간병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주저앉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대상은 제한적이며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간병은
누군가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하는 숭고한 일이자
가장 인간적인 책임이며,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할 책무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은 법정 장기요양보험으로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일본은 공적개호보험으로 10~30% 본인 부담만으로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북유럽,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국가와 지방정부가 간병에 개입하고 책임진다.
간병은 더 이상 가족의 희생 위에 세워져선 안 된다.
이제는 공공간병인 제도, 가족간병 수당, 전국민 간병보험 등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생존의 조건이다.
사랑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내가 무너져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세상이다.
나는 오늘도 병상 곁에서 묻는다.
이 질문이, 더는 외롭지 않게 들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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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아지는 순간,
나는 오히려 더 넓은 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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