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돌다 죽어가는 서민들
어느 날,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뉴스 화면은 연일 붕괴된 의료 시스템을 비추었고, 응급실 거부, 병상 하나 구하지 못해 병원을 떠도는 환자들의 절망이 반복되었습니다. 응급상황에서도 상급병원은 문을 열지 않았고, 사람들은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친 채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저 먼 이야기인 줄 알았던 ‘응급실 뺑뺑이’는 어느새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이웃의 남편도, 낙상으로 정신을 잃은 채 병원을 돌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도, 의료계도, 서로를 탓하며 무책임과 이기주의로 깊은 수렁에 빠져들 뿐이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는 협상의 테이블조차 차리지 않았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이처럼 현실적일 수 있을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같은 서민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그러던 어느 날, 그 혼돈의 한복판에 우리 가족이 서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아내가 낙상으로 머리를 다쳤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급병원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심장이식 환자이자 제1형 당뇨라는 복합 질환을 안고 사는 고위험군 환자였습니다. 수술을 받았던 A 상급병원으로 가야 했지만, 그 병원은 물론 어느 병원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이름도 생소한 허름한 병원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료는커녕 거의 방치에 가까웠습니다. 아내는 대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온몸이 부어올랐고,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는 편마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신은 점점 멀어졌고,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심장이식을 했던 병원에 간신히 연락 하여 외래 예약을 했습니다. 주치의는 뇌 CT를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결과는 뇌출혈. 그제야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가까스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 병만 키워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도 환자 나름입니다. 단순한 외상만 보지 말고, 그 환자가 가지고 있는 병의 중증도에 따라 선별하여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유명 정치인조차 자택에서의 사고 후, 22곳의 응급실에서 거절당했다지요. 그가 그럴진대, 우리 같은 서민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도 결국 ‘응급실 뺑뺑이’라는 이름 없는 길을 돌고 돌아, 낯설고 허름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거기서 아내는 방치되었고,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의식은 희미해졌고, 생명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죽음과 맞닿은 중환자실 병상에서 아내는 정신을 잃고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탓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절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침착해야 해.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아내와 함께 떠났던 명상여행을 떠올렸습니다. 티베트의 고원과 파타고니아의 끝자락,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햇살 아래에서 아내와 함께 나눈 명상과 웃음. 그 찬란한 기억들을 소환하여 나는 아내가 다시 일어나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여행을 떠날 그날을 상상했습니다.
"우리 집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리하여 나는 가족에게 ‘사랑의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총칼 대신, 우리는 사랑을 무기로 들기로 했습니다. 죽기 전에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아내가 아니었던가. 그녀의 소원을 따라, 치유의 숲과 기가 충만한 지구촌의 명소를 찾아 함께 길을 걸었던 우리가 아닌가. 이제 나는 그녀와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나는 없는 간병명상의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나는 아내의 간병인이 되었고, 두 딸은 말없이 그 길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눈물과 체념이 흐르던 병실을, 사랑과 희망이 깃드는 공동체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절망의 자리를 대신하자, 병실은 더 이상 고통만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웃음이 피어났고, 희망이 틈입했으며, 생명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무너졌던 세상을 우리는 다시 세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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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길을 내어주지만,
사랑은 그 길을 걸을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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