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의 조각들
세상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우리는 가장자리라 부른다. 끝과 시작의 경계. 낭떠러지와 하늘 사이. 희망과 절망이 맞닿은 그 불안한 줄기 위에서 나는 지금도 서 있다.
그날도 병실 창밖에는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고, 세상은 멀쩡한 얼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아내의 의식은 흐릿했고, 눈동자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아. 오늘도 살아 있는 거야. 그것이면 돼.”
하지만 정말 그것이면 되는 걸까. 질문은 깊어졌고, 대답은 없었다.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었지만 그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가장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믿음도, 인내도, 심지어 사랑도. 그래도 낙천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의 마음으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밤새 고요하던 병실에서 아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희미하고, 흐느적거리는 발음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나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튀어나온 희망의 작은 불씨였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그건 아마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차가운 병상 옆에서 “내가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것. 절망이 물러나기를, 몸이 다시 일어서기를, 사랑이 이 모든 아픔을 이겨내기를. 긍정의 마음으로!
나는 지금도 병실 창가에 앉아 있다. 아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눈빛이 달라지고, 손끝이 온기를 되찾는다. 우리는 매일 아주 작은 희망의 조각들을 주워 하루를 만든다. 이제 나는 안다. 희망은 한가운데서 피어나지 않는다.
항상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 가장 외롭고, 가장 고요하고, 가장 불안한 그 끝자락에서. 거기서 피어난 희망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단하고, 따뜻하고, 삶 전체를 감싸는 무언가가 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가장자리에서 당신의 손을 잡고 서 있다. 두려우면서도, 조용히 웃는다. 왜냐하면, 여기야말로 희망이 자라는 땅이기 때문이다.
깊은 밤 병실, 창밖엔 별 하나 없는 검은 하늘. 나는 말없이 아내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 손은 마르고 차가웠지만, 내게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이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 소리는 있었지만, 삶의 의지는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 길의 끝은 어딘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 물음은 늘 내 안에서 되돌아왔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너무나 평범해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날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아주 느리게—정말 느리게— 마비된 왼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아내는 왼쪽으로 편마비가 와서 왼발과 왼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순간 나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 조그만 움직임 하나가 지진처럼 가슴을 흔들었다. 마치 세상이 조용히 숨죽이며 그녀의 의지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여보…!”
나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였지만, 그 손끝에 담긴 미세한 떨림은 분명히 살아 있는 생의 대답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일 작고 작은 기적을 만났다. 스스로 수저를 들고, 이따금 휠체어에 앉아 복도를 산책했다.
기적은 언제나 크게 오는 줄 알았다. 하늘이 갈라지고, 빛이 쏟아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기적은 아주 작고, 조용하고, 조금은 수줍게 다가왔다. 삶의 진짜 얼굴은, 그런 조용한 희망 속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작은 기적들을 만나는 동안 어느새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어 있었다.
햇살이 따뜻한 날, 나는 아내를 휠체어에 싣고 옥상정원에 올라 커피를 마셨다. 바람은 가볍고, 꽃은 피어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다시 걷게 되면, 우리 어디로 갈까?” 그 한마디에 나는 병실의 사계절을, 그림자와 싸우던 날들을, 조용히 보내준 사람들의 손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 깊이 말했다.
“어디든 좋아. 당신과 함께라면, 거기가 희망의 땅이니까.”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까지 여행을 하고 싶어요.”
“하하, 좋아요! 세계일주까지 했던 우리가 아니요. 당신이 걷기만 시작하면 어딘들 못 가겠소.”
희망은 그렇게, 눈부시게 가 아니라 소리 없이 조용히 피어난다. 한 송이 들꽃처럼, 한 줄기 빛처럼, 한 마디 다정한 말처럼. 피어나는 작은 희망들, 그 작은 희망의 조각들이 오늘도 나를 일으킨다. 나는 순간 100세까지 자전거를 타며 인생을 천천히, 오래 살아갔던 잔 칼망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감정을 끌어안지 않아. 나쁜 감정은 속에서 곪에 놔두면 안 되거든."
그래, 나쁜 감정은 털어버리자. 히말라야 설산을 올라 순백의 눈 위에서 명상을 했던 순간들, 티베트로 순례길을 떠났던 좋은 추억들만 생각하자. 그곳에 스트레스는 없었어. 느리지만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안겨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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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외면한 고통은
언젠가 모두의 몫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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