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진정으로 값진 것들은 모두 값이 없다
아내를 재활치료실로 보내고, 나는 오늘도 병원 옥상정원으로 향한다.
아내의 몸은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다.
이젠 치료사에게 맡기고 돌아설 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금세 도착할 4층 옥상이지만, 나는 일부러 60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운동도 되거니와, 이 계단을 언젠가 아내와 함께 오를 날을 꿈꾸며. 그날이 오리라 믿는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움과 희망이 섞인 발걸음이다. 계단마다 복도에 놓인 기저귀통과 음식물 쓰레기통, 그곳에서 나는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처음엔 메케하고 역겨웠지만, 이제는 그 냄새조차 구수하게 느껴진다. 환자와 간병인, 가족들의 슬픔과 애환이 녹아든 냄새이기에— 그건 곧, 내 아내의 냄새가 베여있기도 하다.
옥상 문을 열면 찬란한 햇살이 쏟아진다.
눈부신 태양 아래, 싱그러운 신록이 바람에 일렁인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잔디밭 사이로 고개를 내민 샛노란 괭이밥꽃이다.
햇빛을 즐기며, 바람에 하늘거리는 작은 꽃들.
마치 병원에 입원한 이들을 위로하듯,
조용히, 겸손하게, 그러나 꿋꿋하게 피어 있다.
괭이밥은 ‘치유의 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자란다.
아파트 화분 속에도, 텃밭에도, 시골 장독대 주변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어릴 적 속이 좋지 않으면 장독대 옆에 핀 괭이밥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어머니는 해독작용이 있다며 조금씩만 먹으라고 하셨다.
시큼하지만 상큼했고,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돌았다.
그때부터 어쩌면 나는 자연의 약손을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재활병원엔 200여 명의 환자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간다. 그들 곁에서 괭이밥은 말없이 자란다. 혹시 이 작은 꽃들이, 아픈 이들을 치유하려고 몰려든 것은 아닐까?
식물 중에서도 괭이밥은 최고의 해독력을 지녔다. ‘쥐약을 먹은 고양이가 괭이밥을 먹고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고양이밥 → 괭이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이 식물이 해독제임을 알았을까? 자연은 조용하지만, 언제나 경이로운 치유의 힘을 품고 있다
약초학자 스티븐 해로드 뷰너는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병든 생물들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괭이밥도 그 하나임이 분명하다. 괭이밥은 저녁이 되면 황금빛 꽃잎을 오므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운다. 햇살에 피어나고, 어둠 속에 잠드는 단순하고 정직한 리듬. 그 삶의 리듬은 불면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만 너무 많이 먹거나 열을 가하면 해가 되니 자연 그대로 샐러드나 물김치에 조금 넣어 먹는 것이 약이 된다고 한다.
‘빛나는 마음’, 이것이 괭이밥의 꽃말이다.
하트 모양의 잎을 지녔기에 ‘사랑초’라고도 불린다.
조건 없이, 탐욕 없이,
아픈 생명을 위해 피어난 이 꽃은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지만,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값진 것들은 모두 값이 없다네.
바람과 물, 그리고 사랑처럼.”
— 에바 스트리트마터
바람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물은 생명을 보듬고 흘러가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기적을 품는다.
그렇다면, 이 괭이밥 또한 바람에 날려와 옥상 정원에 뿌리를 내리고, 몇 방울의 이슬방울을 머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사랑과 치유의 기적을 건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기꺼이 누리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살며 물 대신 술을 마시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에게 짐과 의무의 멍에를 씌운다.
나 또한 그랬다.
젊은 날, 일이 풀리지 않으면 그 화를 고스란히 집으로 들고 와
아내에게 쏟아내곤 했다.
그러면 아내는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 안으며 다독였다. 하지만 아내인들 사람인데 속이 편했겠는가. 그렇게 쌓인 앙금이 병이 되어 돌아온 건 아닐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그런 사소한 일에 사람은 목숨을 건다.
그리고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오늘 나는 옥상정원에서 괭이밥을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긴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피어난 이 꽃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따뜻하게, 생명을 품고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탐욕 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 바람처럼, 물처럼, 공기처럼.
그 안에 조그마한 치유의 씨앗 하나 키우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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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별은 침묵으로 나를 위로했고,
기도는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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