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24시간

– 병고로 약을 삼는 간병명상

by 찰라

00:30 – 깊은 밤의 기도

적막이 내린 병실, 모니터의 초록 불빛만이 어둠을 가른다. 아내가 뒤척인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그녀의 이마를 짚는다. 차가운 이마, 식은땀. 혈당기를 꺼내 조심스레 손끝을 찌른다. 숫자 60. 저혈당이다. 망고 주스를 그녀의 입에 댄다. 얼굴빛이 창백하다. 초콜릿을 입에 넣어준다. 말없이 눈을 마주친다. 그 눈빛에 담긴 ‘미안함’과 ‘감사함’을 나는 읽는다. 손을 잡는다. 그 손 안에서 우리는 말 없이 마음을 나눈다.


한 시간이 흘러 다시 측정한 혈당은 120. 휴— 안도의 숨을 쉰다.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이 들지만 나는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언제까지 이 삶이 계속될까. 재활의 시간은 느리고, 기약은 없다. 하지만 아픈 아내를 간병하며 나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얻는다. 시트 위로 잔잔히 흐르는 그녀의 숨결 속에서 문득 떠오른 부처님의 말씀.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고로 약을 삼으라.”


처음엔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병이 약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간병의 나날 속에서,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처음엔 고단하고 지쳤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식사와 재활, 약 복용을 챙기며 삶의 모든 리듬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이 병실이 곧 도량(道場)이며, 이 간병이 곧 나의 수행이고, 하루하루의 반복이 명상이라는 것을.


재활은 느리고 길다. 환자도, 간병인도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하다. 가끔 마음이 흔들린다.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시 되뇐다. 병고야말로 나를 단련하고, 사랑을 증명하고, 삶을 통째로 껴안게 하는 길이다.


간병은 결코 쉽지 않다. 내 삶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며, 자비의 씨앗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낀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약해진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립감, 삶에게 버려진 듯한 외로움이 몰려온다. 그때,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고로 약을 삼으라.”


처음엔 너무 가혹하게 들렸던 말. 병든 자에게 병조차 바라지 말라니.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말씀은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깊은 자비를 담고 있다. 병을 고통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의 뜻을 보게 된다. 병으로 인해 깨어나고, 고통 속에서 진정한 자기를 마주하게 된다.


건강할 땐 당연했던 것들—잠들 수 있는 평안함, 혼자 걷는 기쁨, 소화되는 한 숟갈의 은혜… 모두가 기적이었다는 것을 병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병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달리던 삶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우리는 잊고 지내던 것을 다시 만난다. 가족의 눈빛, 친구의 손길, 살아 있음의 기쁨.


병은 몸을 약하게 하지만, 그로 인해 마음은 더 깊어진다. 고통을 통과한 사람만이 남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진정한 연민과 자비는 그 아픔을 품은 이의 마음에서 나온다. 병고는 끝이 아니라, 내면의 문을 여는 위대한 시작이다. 피하지 말고 껴안으라. 저주가 아니라, 거울로 삼으라. 그때 병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삶의 스승이 되고, 참된 나를 비추는 부처님의 법문이 된다.오늘도 아내의 손을 잡으며 나는 속삭인다.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고로 약을 삼으라.”


그 말은 나를 가장 낮은 곳으로 이끌었고, 그 자리에서 가장 순수한 빛이 피어나는 것을 나는 본다. 아내 옆의 보조침대에 누워 그녀의 체온을 느낀다. 숨 쉬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되새기며, 새벽 세 시경, 나는 비로소 잠이 든다.


05:00 – 새벽의 햇살처럼

창밖이 밝아온다. 나는 젖은 기저귀를 갈고, 몸을 닦아주며 하루를 연다. 혈당은 150. 조금 높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아내의 머리카락을 빗어준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에 닿는다. 나는 조용히 말한다. “당신은… 오늘도 예뻐요.” 그녀는 미소 짓는다. 그 웃음 하나면 오늘 하루도 견딜 수 있다.


07:00 – 아침 식사

냉장고에서 인슐린 펜을 꺼낸다. 복부에 주사기를 놓고, 아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데운다. 요구르트에 블루베리를 섞어 식탁에 올린다. 그녀가 식사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바라본다. 그 한 입, 한 입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09:00 – 두 사람이 걷는 길, 물리치료

휠체어에 앉은 그녀를 밀며 복도를 지난다. 오늘은 네 걸음. 어제보다 한 걸음 더. 그녀는 내 손을 꼭 잡는다. 작지만 분명한 진보. 그것이 희망이다. 물리치료실에서 아내는 작업치료, 인지치료, 기구치료 등 2시간 넘게 치료를 받는다. 고된 치료시간이지만 아내는 잘 참고 적응하고 있다.


12:00 – 함께 나누는 밥상

부드럽게 식힌 밥, 미지근한 국. 한 숟갈씩 입에 넣어준다. 그녀가 천천히 씹고 삼킬 때마다 나는 생명의 기쁨을 느낀다. 식사가 끝나고 그녀는 내 손등을 토닥인다. 말없는 감사. 그 손길에 내 마음도 눈물겹다.


13:00 – 옥상정원의 평화

점심 후, 그녀를 옥상으로 데려간다. 햇살과 바람, 초록 잎 사이로 그녀의 눈가에 닿는 따뜻함. “참 좋다…”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이 내 가슴에 포근히 안긴다.


14:00 – 오후의 재활

퍼즐 맞추기, 그림 그리기, 숫자놀이. 인지치료는 비현실과 현실을 잇는 다리다. 편마비된 팔다리는 물리치료로 천천히 회복된다. 작업치료는 손끝의 감각을, 기구치료는 근육과 균형을 다시 일으킨다. 그녀는 힘들지만 잘 견뎌낸다. 나는 옆에서 함께 땀을 흘린다.


17:00 – 저녁 식사

식판 위에 담긴 잡곡밥, 미지근한 국, 소박한 반찬 몇 가지. 나는 조심스레 수저를 들어 그녀의 입에 음식을 넣는다. 그녀는 말없이 먹고, 나는 말없이 바라본다. 한 입, 또 한 입. 그저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저녁이다.


18:00 – 다시 해지는 시간

몸을 씻기고, 양치를 돕고, 잠자리를 준비한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당신이 더 수고했지요. 미안해요.”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는 저물지만, 사랑은 저물지 않는다.


21:00 – 사랑으로 채우는 밤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음악을 듣는다. 조용한 대화가 이어진다. “우리가 아직 함께 있어서 좋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당신은 내 하루 전부예요.” 그녀가 있는 이 병실이 내게는 집이고, 기도처이며, 세상의 전부다.


24:00 – 끝나지 않는 동행

하루는 끝났지만, 간병은 끝나지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는 기도자이자 동행자다. 그녀가 숨 쉬는 동안 나는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간다. 삶은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다. 그 한숨 멈추면 열반의 세계가 열린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살아냈고, 병고로 약을 삼는자비 명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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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길었지만,

그 하루가 쌓여 우리를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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