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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Sep 12. 2024

신혼집은 시댁

8. 맞벌이 회사원 부부의 시작

2023년을 기준으로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3.9세, 여자 31.5세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대학과 군대를 다녀와 취업을 하고 약 5년, 여자는 대학 졸업하고 약 7년 정도의 사회생활을 경험한 나이라고 볼 수 있겠다.


2012년. 인아씨는 28세, 대명씨는 30세. 2023년과 비교하면 평균보다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결혼한 두 사람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빨리 결혼한 편에 속했다. 두 사람 다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양쪽 집안 어른들도, 본인들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큰 걱정 없이 결혼을 결정할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많은 돈이 드는 신혼집을 당시 대명씨가 부모님과 거주하고 있던 집. 즉, 인아씨에게는 시댁에서 시작하기로 했기에 두 사람은 맞벌이 월급으로 넉넉하게 생활을 계획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시댁에 살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시부모님이 처음에 같이 사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인아씨는 신혼집도 조금 찾아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서울,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양재 쪽도 아파트가 많고, 교통이 편리하다. 다만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회사를 오갈 수 있는 위치이기에,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키울 때 거리가 멀어서 시간 낭비가 많을 것 같았다.


분당, 오래된 아파트가 많고 아기가 태어나면 어렸을 때도 학교를 다니는 나이에도 좋을 학군지. 교통도 편리하고, 탄천을 끼고 있어서 살기에 아주 좋은 동네였다. 회사 근처다. 그런데 비싸다.


수지, 규모가 큰 새 아파트 단지와 옛날 아파트 단지가 섞여 있다. 신혼부부와 어린아이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아이 키우며 살기에 적당했다. 오래된 아파트는 수리를 해야 했고, 새 아파트는 역시 비싸다. 


수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다. 회사에서 30분 내 이동가능. 아이가 생겼을 때 회사 어린이집으로 같이 다닐 수 있는 거리 내에 있는 동네 중 집 값이 가장 저렴한 지역, 가성비가 좋았다.


집값을 기준으로 서울이 가장 비싸고, 분당, 그다음이 수지, 수원 순이었다. 인아씨와 대명씨는 취업 후 돈을 차곡차곡 잘 모아 놓은 편이었다. 주식, 적금, 그리고 일반 예금에 조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아파트를 바로 사거나, 전세를 대출 없이 구할 정도의 돈은 아니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봤자 신입사원 월급에, 제대로 돈을 모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전세 신혼집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1억, 많게는 3억의 대출이 필요했다.


“이자가 생각보다 비싸네.”


“거기에 가구도, 가전제품도, 생활용품도 다 새로 사야 되고, 아파트 관리비도 따로 들잖아.”


“기본 생활비로 100만 원 이상은 매달 고정지출이 되겠어. 거기에 우리 먹고 입고 하는 건 포함 안된 건데.”


“나는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저금하고, 생활비도 얼마 안 들거라 생각해서  우리 둘이 모으면 금방 부자 될 줄 알았어. 그런데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그냥 없어지는 거면, 일 년에 얼마 모으지도 못하겠다. 집 값이 비싼 줄은 알았지만 우와… ” 


신혼집을 구하면서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고 알아본 결과, 두 사람의 힘으로 스스로 해나가고 싶었던, 또 나름 자신 있었던 마음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생활하던 대학생 때도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모았고, 취업하고 월급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느꼈던 지난 몇 년간도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대기업 다니니까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금세 돈도 많이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에게 약간은 충격적인 계산 결과였기 때문이다. 현실은 참 만만하지가 않았다.


“엄마가 아기 태어나면 봐 줄게.”


결정적인 한마디였다. 결혼을 준비하는 두 사람 주변에는 아직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없었다. 막연히 연애의 해피엔딩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느낌이었는데, 신혼집을 알아보면서 크게 한 방 퍽, 출산과 육아라는 곧 닥칠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며 다시 한 방 퍽! 예상치 못한 펀치를 맞은 느낌이었다. 결혼을 해도, 아기가 태어나도 당연히 계속 일을 할 생각이었고, 또 건강한 나이에 빨리 아기를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사실 아기가 태어난다는 일을 어느 정도 막연하기도 했지만, 아기가 태어난다 그다음 단계, 즉,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남는 방 하나는 너네가 쓰고 다른 하나는 아이 키우면 되니까 같이 들어와서 살아. 회사 다니면서 살림하기도 힘들어.”


특히 아끼는 둘째 아들의 결혼이어서였을까. 든든한 아들 둘과 함께 살다가 연이어 결혼을 시키면서 허전해서였을까. 대명씨의 부모님은 같이 들어와서 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던 그 말이 가능하면 따로 신혼집을 구해서 편하게 살고 싶었던 두 사람의 마음을 설득해 가고 있었다. 잘 생각해 보자. 신혼집 대출이자에, 관리비에, 기본 생활비만 해도 얼만가. 부모님과 같이 살면 당연히 생활비는 드려야겠지만, 대출 안 받아도 되고, 아파트 관리비 안내도 되고 모았던 돈으로 투자하거나 조금 더 큰 목돈을 만들기 너무 좋지 않나?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나야, 뭐 원래 살던 집이었고, 우리 부모님인데 불편할 게 있겠어? 다만 아직까지 한 번도 집 떠나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독립해보고 싶은 로망 같은 게 있긴 했지만, 네가 괜찮으면 나는 우리 집에서 살면서 돈 아끼고, 살림을 엄마가 하시니까 오히려 너도 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나는 혼자 오래 살아서 누구랑 같이 살면 불편할 것 같기도 해. 그런데 어차피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 있고, 또 아기 낳으면 봐주신다고 하니까, 한 집에 살면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우리 집에 들어가서 살아도 정말 괜찮겠어?”


“어머님 아버님이 오히려 나 때문에 불편하신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거야, 엄마아빠가 먼저 들어와서 살라고 했으니 후회하셔도 어쩔 수 없고.”


“들어가서 살면, 집도 그만 알아봐도 되고, 침대만 하나 사면 되겠다. 화장대랑 그런 건 내가 쓰던 거 가져가면 되거든.”


“여러모로 간편해졌네. 준비하던 것, 알아보던 것 전부 안 해도 되고.”


“그러게. 그럼 들어가서 사는 걸로 하자. 부모님께도 내가 잘할게.”


“이미 잘하고 있어. 꿈꾸던 신혼집 꾸미기 이런 거 못해서 약간 아쉽기도 한데, 진짜 괜찮은 거야?”


“그럼! 여러모로 좋아. 돈도 아끼고, 회사도 가깝고, 무엇보다 아기 낳으면 키워준다고 하시잖아. 회사 선배들한테 물어봤는데 결혼하면 그게 진짜 큰 일이라고, 감사한 일이라고 많이들 얘기해 주더라.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오케이.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는 엄청 좋아하실 거야. 그럼 말씀드린다? 혹시 나중에라도 같이 사는 게 힘들거나 불편하면 솔직하게 말해줘. ”


‘시’ 자가 들어가는 건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꼴도 보기 싫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생각한 인아씨. 그렇게 그들의 신혼은 대명씨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시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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