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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Sep 10. 2024

드디어, 서울 건물주

7. 서울에 내 건물 한 채

코로나 이후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전부터 착실히 부동산을 중심으로 재테크를 해온 덕에, 

인아씨 가족도 강남까지 욕심을 냈었던 거다. 하지만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 전세 사기 등이 사회 이슈가 되면서 정부는 각종 규제와 세금을 만들어냈고, 그 때문에 일반인들의 부동산 투자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부동산 가격도 전국적으로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대명씨가 서울로 이사를 온 것은 그저 똘똘한 한 채의 자가 아파트를 구입하고, 아이들을 공부 잘할 수 있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서울에 건물 몇 채쯤은 소유하면서 아이들한테는 공부공부 하는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선택해서 할 수 있게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고 싶어서였다. 회사원으로서는 불가능한 꿈이었지만 부동산 투자자로서는 실현 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와중에도 서울, 특히 강남권 아파트들은 일정 가격 이하로 매매가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종부세, 재산세 같은 세금 부담만 늘어나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입장에서 서울 자가 아파트를 사서 거주를 한다는 것은 돈을 묵히고 있는다는 뜻이었다. 아파트 가격은 아무리 올라도 내가 살 집은 계속 살아야 하기에 시세차익을 노리고 쉽게 다시 사고팔고 할 수는 없다. 또 1 가구 1 주택 장기보유, 장기 실거주 등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이상 집값이 올라도 시세차익 대부분을 양도세로 내게 되어 있다. 뉴스에서 워낙 자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요즘 강남 아파트 가격이면 지방에서는 빌딩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이지 않나? 건물을 사서 월세를 받고 땅값이 오르는 시세차익, 그리고 세금을 고려한다면 역시 돈이 묶여 있게 되는 아파트보다는 상가 건물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위치는 서울이어야 했고.


인아씨도 대충 알고 있었다. 아이들 키우는 엄마이기에 서울에 자가로, 자주 이사 다니지 않고, 아이들 학교 옮기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한 곳에서 편히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대명씨의 의견도 틀렸다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아직 투자도 계속하고 돈을 굴려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서울 아파트 한 채에 전재산을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집이야 월세든 전세든 내 집이든, 내가 지금 사는 곳이 내 집이다 생각하고 정 붙이고 살면 되는 거니까. 좀 더 돈을 벌어 현금 확보가 충분히 되면 나중에 살 수도 있는 거니까.


“삼청동에 같이 건물 보러 갈래? 오전에 스케줄 있어?”

“오늘? 오늘 당신 휴가야? 어쩐지 매일 일찍 가는 사람이 웬일인가 했더니.”

“응 오늘 휴가 냈어. 건물 보러 가려고.”

“근데 어디? 삼청동이라고? 지난번에 말한 그 건물?”

“응. 맞아. 실은 내가 한번 보고 왔는데, 가격이 잘 나와서 사고 싶더라고. 근데 지금까지 우리가 산 부둥산 중에 제일 비싸기도 하고, 이런 건 당신도 같이 보고,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서.”

“오~드디어 서울에 건물주 되는 거야? 아니, 근데 거긴 주택 아닌가?”

“현재는 주택인데, 용도변경해서 상가로 살 거야. 임대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카페도 있어.”

“투자금은? 대출은? 진짜 살 수 있는 거야? 우리가 매매하는 거라고? 그 카페는 확실히 들어오는 거야?”

질문을 쏟아내는 인아씨를 향해 대명씨가 웃었다. 

“응” 

“뭐가 응인데?”

“우리가 살 수 있다고! 일단 마음에 들면 대출만 다시 한번 알아보면 될 것 같아.”

“헐, 이건 진짜 실감이… 안 난다. 당신 대단해 진짜. 강남으로 이사오자고 할 때랑은 기분이 완전히 달라. 어쨌든 이번 건 우리가 소유하는 거라는 거지? 당장 가보자!”

“당장 아니고 이따 11시 반~12시쯤 약속 잡아놨어.”

“그냥 지금 가자! 이야~신난다! 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던지! 우리 건물을 사러 간다고? 우와! 하하하!”


흔히 생각하는 높고 삐까번쩍한 건물, 1층에는 식당과 카페가 있고, 위로는 병원과 사무실이 있는 그런 수익형 건물은 아니었다. 건물이라기에는 실망스러운, 하지만 마당이 있는 멋스럽고 아담한 한옥집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파릇파릇한 이파리들이 무성하게. 아름드리나무는 아니었지만 한옥집 기와,  그리고 마당 위로 품고 있는 푸르른 하늘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얼마나 오래된 집이에요?”

“광복 전에 지은 집이래요.”

“광복이라면 1945년 얘기하는 거예요?”

“네.”

“와…….”


부동산 소장님은 임대 들어올 업체에서 보통 전체 인테리어를 싹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낡은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이 건물의 입지, 현재 같은 동네 다른 매물들에 비해 싸게 나온 평당 가격, 코로나가 끝나가니 향후 삼청동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날 것 등 장점 위주로 매물 소개를 해주었다.


“우리 가족들이 살 집이 아니니까, 딱히 뭘 봐야 될지 모르겠네. 그렇다고 사람이 들어와서 사는 원룸 건물도 아니고.”


남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응. 위치하고 전체적인 건물만 보면 될 것 같아. 어차피 수리하면 싹 바뀔 거라. 내가 가용자금이랑 투자대비 수익률 같은 것 좀 계산해 왔거든. 일단은 임대 들어온다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결론이야.

“있다면서.”

“응. 근데 계약서를 써야 확실한 거니까 혹시 갑자기 맘을 바꿀 수도 있고.”

“헉, 만약에 우리가 샀는데 임대가 안 나가고 비어있으면 큰일이네. 대출이자가 어마어마할 텐데.”

“응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임대가 안 들어오는 경우까지 생각해 보면 자금 계획 복잡해지더라고. 근데 일단 위치랑 건물은 마음에 들어서, 당신도 보면 좋겠다 싶었어.”

“아, 내가 좋다고 하면 사는 거야?”

“취등록세, 임대 안 나갈 경우, 대출가능 금액이랑 대출 이자 등등 계산할 게 많다니까. 그래도 서울에 건물을 사는 거니까 같이 보고 결정하자는 거지.”


기분이 좋았다. 인아씨는 저 건물을 사든 안 사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건물주’의 ‘건물’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지만, 작으면 어떻고, 단층이면 어떤가? 어쨌든 서울 아닌가? 게다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동네니까 임대도 금방 될 것 같았다. 인아씨는 남편에게 물었다.


“이 건물, 아니 이 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아, 서울이 넓잖아. 지역을 조금 좁혀서 건물들 보고 있었어. 서울에서 상징적인 위치이면서도 내가 가진 돈으로 접근 가능한 곳들. 강북에서는 삼청동이 큰 건물도 많지만 작은 한옥이나 주택들도 꽤 있어서 금액이 가능하겠더라고. 지금도 많이 회복 중이지만 내년쯤이면 관광객들도 다시 예전처럼 늘어날 것 같고. 그리고 결혼 전에 당신이 얘기한 적 있어. 늙으면 마당 있는 한옥집에서 살고 싶다고. 그냥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 그래서 한옥도 꼭 한 채 사고 싶었어. 물론 우리가 살 집이 아니긴 하지만. 일단은 강남 쪽에도 같이 찾아보고 있는 중이긴 한데 물건이 있고 돈이 있다고 다 내가 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부동산은. 그리고 아까 봤었던 부동산 소장님 있지? 소개받아서 만나 뵈었는데 좋으신 분 같더라. 이 동네 오래 사셨고. 괜찮은 물건 있다고 이 전에도 몇 번 연락 주셨는데 마음에 드는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야.”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삼청동에서는 카페나 식당이 한옥이면 사람들이 무조건 한 번씩은 가볼 것 같다!” 

“응, 그러니까. 근데 아무튼 단위가 너무 크니까 매매한다 만다 결정이 쉽지가 않네. 실은 나도 좀 떨린달까?”

“아무래도 그렇지. 대출이자만 생각해도 어휴. 나는 당신이 건물건물할 때 사실 상상이 잘 안 되었거든. 근데 이렇게 보니까 또 뭔가 살 수 있을 것 같고, 괜스레 마음이 동동 뜨는 게 희망회로가 막 돌아간다?. 무지개가 걸린 밝은 미래가 눈앞에 펼쳐진달까?”

“하하하, 부정적인 것보다는 나은데, 너무 잘된다고만 생각하기엔 돈이 커서 살짝 떨려. 아무튼 내가 이리저리 잘 계산해 볼게. 건물 사면서 대출 이자 때문에 생활이 쪼들리게 되면 안 되니까.”

“엇!? 이자 때문에 생활비를 줄여야 된다고? 그건 안되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안되게 하려면  욕심내거나 무리하면 안 될 것 같거든.”


건물을 보러 간다고 해서 다 건물을 계약하는 건 아니었구나. 인아씨는 집을 나설 때 흥분되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보고 나니 역시 아무나 서울에 건물주가 되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유명인 누가 서울 한남동에 고급 아파트를 매입했다더라, 청담동에 있던 건물을 팔아서 시세차익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뉴스기사를 보며 막연히 생각했던 그런 건물주와 일반인 건물주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었다. 현금으로 수십억을 내서 건물을 사는 사람과 건물 담보로 최대한의 대출을 받아서, 최소한의 투자금으로 건물을 사는 일반인은 마치 천만 원 넘는 명품백을 일시불로 결제하는 것과 24개월 할부로도 구입하기 망설여지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가방을 가지고 멋 부리며 다닐지언정 매달 빠져나갈 이자와 원금에 허덕이며 먹을 것 아껴 먹어야 하는 그런 씁쓸한 기분. 흐으윽 상상하기 싫었다.


다음날, 퇴근하고 늦게 들어오는 대명씨의 표정이 밝다. 


“회사에서 좋은 일 있었어? 표정이 밝아 보이네?”

“딱히 좋은 일이라기보다, 어제 그 부동산에서 전화 왔더라고.”

“아.. 그래서?”

“매매할 거냐고. 두 번이나 보러 갔으니 산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그렇지. 사고 싶으니까 두 번이나 보러 갔지.”

“임차가 들어와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내가 아무리 계산해 봐도 임차인 없는 건물을 사면 한 두 달 어떻게 대출이자 낸다고 쳐도,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말이야. 관심 있다던 그 카페는 어떻게 되었냐 물어봤더니 거기는 결국, 지하철역 바로 앞 건물로 오늘 갑자기 계약을 했다는 거야.”

“어? 뭐야 그럼, 들어오겠다던 카페가 딴 데로 간 거네.”

“응. 우리가 봤던 건물도 좋은데, 집주인이 건물도 내놨고, 수리도 많이 해야 되는데, 불확실한 게 많으니까 자기네 일정 같은 거 맞추려면 아무래도 복잡하다고, 한옥도 멋지고 분위기가 좋아서 아쉽지만 역세권 쪽 괜찮은 상가자리가 있어서 그리로 결정했대.”

“그럼 우리는 거기 못 사는 거야?”

“아직은 시기상 조였나 봐. 건물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는데, 임차가 없는 상태에선 확실히 무리더라고. 못 산다고 하니 나는 의외로 또 기분이 좋네?”

“이잉? 아쉬워야 되는 거 아니야?”

“아쉽지. 아쉽기야 한데 큰 고민거리가 해결된 것 같아, 하하. 당분간 그 집 임차 들어오는 거 계속 확인하면서 또 다른 물건도 찾아볼게. 확실한 임차인 있고, 투자대비 수익률이 높은 건물로 말이야.”

“아……하하 좋은 경험 했네.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도 우리, 건물 보러 다니는 신흥부자느낌이야. 어쨌든 또 돈 모으면서 다른 좋은 물건 찾아보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난 솔직히 기분이 좋았는데, 당신이 아쉬워할 것 같았거든.”

“아쉽긴 해. 그래도 기회가 없어진 게 아니니까. 조만간 서울 건물주 진짜로 되긴 될 거잖아!?”

“그래. 맞아. 서울에서, 여기 근처에서 건물 꼭 사고 싶어. 금방 살 거야!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안에 꼭!!”


부부는 손을 맞잡고 크게  웃으며 악수를 했다. 금세 이뤄질 것 같던 서울 건물주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간 느낌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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