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아씨의 서울생활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새 학교에서의 첫날이야!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으면 좋겠다~!
보자, 우리 별이가 몇 반이더라 2학년 7반,
산이는 4학년 8반이네!”
“엄마, 나 조금만 더 잘래.”
“헛, 오늘부터 개학이라고? 아……”
하나는 눈도 안 뜨고, 다른 하나는 깨자마자 울상을 지었다.
후우~ 인아씨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1초, 2초, 3초. 다시 스마~일 장착!
새 학교의 첫날, 낯설고 어렵지만 혼자 학교로 들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 반을 찾아야 하고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할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오늘 아침은 웃어야지!’
드디어 길고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이었다. 여전히 전과 같은 회사를 다니며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주말에는 부동산 임장하러 다니느라 크게 바뀐 게 없는 대명 씨의 일상과 달리 이사는 전업주부인 인아씨와 아이들의 일상을 전부 바꾸어 놓았다고 할 만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도, 아이들의 학교도, 친구도 다 바뀌었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첫날. 멀지 않은 거리지만 손 꼭 잡고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는 길. 1학년 입학식도 있는 날이라, 벌써부터 학교 가는 길이 북적북적하다. 즐거운 표정의 부모님들, 눈이 반짝거리는 예쁜 아이들. 날씨는 추워도 봄의 생기가 느껴져 인아씨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꼭 자기가 입학하는 날인 것처럼. 인아씨는 학교 앞에서 별이와 산이를 한 번씩 꼭 안아주었다.
“잘 다녀와~ 끝나고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섰다.
‘방학 내내 집에서 지지고 볶던 시간은 가고 이제는 자유의 시간이 생긴다니!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지.’
방학기간 중에 이사를 왔기에 서울에 왔어도 주로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아직까지 서울 생활을 누리지 못한 인아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무엇을 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고민하다가는 아이들 하교시간이야. 일단 오늘은 집 근처부터. 한강을 산책하고 백화점도 들러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와야겠다. 좋았어!’
전 같았으면 동네 엄마들 단톡방에 오늘 같이 산책할 사람? 커피 한잔 할 시간 되는 사람? 하고 톡을 먼저 남겼을 텐데. 그래서 같이 수다 떨면서 산책할 수 있었을 텐데. 한강공원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던 인아씨는 예전 생각이 났다.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어쩌랴. 좋았던 것들, 편했던 것들 다 포기하고 좀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려고 여기까지 온 것을.
‘친구야 여기서도 사귀면 되고, 아니면 혼자도 좋지 뭐.’
쌩~! 한강공원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 정면으로 확 불어왔다. 3월의 한강바람은 꽤나 쌀쌀했다. 그래도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보니 차가운 강바람도 개운하게 느껴졌다. SNS에서 많이 봤던 유명한 커피체인점도 보였다. 강 건너 남산타워도 잘 보이는 맑은 날이었다.
‘오~!!! 남산타워다. 사진 찍어야지~.’
외국인 관광객 커플도 인아씨처럼 남산타워가 나오는 한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Can you take a photo for us?”
“엇 깜짝이야. Photo? Sure!”
둘이서 찍은 사진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외국인 커플은 인아씨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외국인들도 오랜만이네.’
‘오~ 요트다! 한강에 요트가 있었나? 탈 수 있는 건가?’
인아씨 자신도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살피며 사진도 찍어가며 흥미롭게 주변을 걸어 다녔다.
‘축구장도 있고, 여기는 그늘막 텐트 설치도 할 수 있고, 쓰레기 통도 있네. 쓰레기 통 있는 공원 오랜만이다.’
‘엇, 자전거 도로구나! 우와~~ 멋있다! 복장하며, 자전거 하며, 이야~ 단체로 줄 맞춰서 저렇게 달리니 꼭 경주를 보는 것 같은데? 저런 스피드로 쌩쌩 달리면 스트레스도 다 풀리겠다!’
‘저건 뭐지? 아……한강에 빠져 죽었다던 그 학생 뉴스 기억난다. 그게 여기였나?. 아이코……그렇지……부모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흑.’
‘세빛둥둥섬이 아니라 세빛섬이구나. 이름이 바뀌었네. 밤에 보면 예쁘겠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두리번두리번 뭐가 있나 살펴보며 걸어오느라 그만큼 걸었다는 사실도 몰랐던 인아씨는 갈증을 느꼈다. 자전거 도로 쪽에 작은 편의점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생수하나를 샀다.
‘엇! 라면이다! 이거 봉지라면 끓여주는 기계네? 오오! 신기해. 나중에 아이들이랑 자전거 타고 와서 먹어봐야겠다!’
한강에 왔을 뿐인데 인아씨는 새삼 신기한 게 많고 구경할 게 많아서 자기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꼭 해외 관광 온 사람처럼 모든 것이 다 신기해. 풋, 나 웃긴다.’
인아씨는 이제 근처가 집이니까 자주 와야겠다고, 관광객모드 아니고 거주민모드가 장착되려면 자주 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짝 미소 지었다. 물을 마시며 좀 전에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많이도 찍었다.
그리고는 초록 검색창을 열었다. 새나라 백화점 가는 길 엔터.
‘멀지 않네.’
인아씨는 새삼스레 신이 났다. 백화점 구경이 얼마만인지. 빨리 가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SNS에 올라오는 신상 맛집들도 가봐야지.
'내일은 어디로 가볼까? 지하철타고 국립중앙박물관을 갈까? 요즘 여의도에 새로 생긴 더에이치 백화점이 그렇게 좋다던데 거기를 가볼까? 경복궁이랑 창덕궁도 가보고 싶다.'
런던 하루, 파리 하루, 바르셀로나 하루, 도시별로 뭐가 그리 급했는지, 왜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은 많았는지, 하루하루 도장 깨기 다니면서 사진만 후딱 찍고 다른 나라로 이동하던 대학시절의 배낭여행처럼 인아씨는 동네 관광도 이번달에 다 끝내려는 사람마냥 매일매일 부지런히 계획하고 다녔다. 그렇게 한동안 강남 주민 인아씨의 하루는 서울 동네 투어로 꽉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