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게 강남 아파트지.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반포아파트구나.”
“오래된 집을 먼저 보고 와서 그런가, 10년도 훨씬 넘은 아파트인데 완전 새것처럼 보인다.”
“나 입사할 때 쯤이던가? 엄마 친구가 아들 대학교 보낸다고 여기 반포아파트 작은 평수 산다고 했었거든. 치과의사셨는데 아예 집을 사 버리시더라고. 그 때 한 7~8억? 우리가 그 큰 돈으로 작은 아파트 한 채 산다고? 하면서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
“그 때 그 돈이면 엄청나지. 물론 지금은 더 어마어마하지만.
집을 보러 오긴 했지만 여기는 예산상 우리한테는 조금 빠듯해. 전세도 월세도 많이 비싸.”
“알겠어. 일단 봐두자. 말로만 듣던 반포아파트 구경 언제 한번 해봐. 오~ 저기 놀이터 좀 봐.”
우레탄 바닥이 깔린 놀이터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로 시선을 끌었다.
분수가 나오는 석가산 조경이 인상적이었고, 그 주위로 인공 시냇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놀이터 쪽에는 바닥분수 구멍도 보인다. 하원, 하교 시간이라 그런가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들 놀기 좋게 생긴 아파트네.
애들도 많고 놀이터도 여러 개고
학교도 단지 내에 연결되어 있고. 여기 살려면 얼마였더라?'
걸으면서 인아씨는 부동산 매물 검색을 해본다.
‘허걱……진짜로 여기서 살지는 못하겠…네….'
“안녕하세요? 요즘 집 보러 오시는 분들이 꽤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따라오시죠.”
“네, 안녕하세요. 괜찮습니다. 몇 동으로 가나요?”
“네, 101동, 107동 보러 갈 거예요. 여기가 상가도 가깝고 지하철역에도 가까워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동이죠. 지금 가는 집이 A타입이라 아마 구조도 제일 마음에 드실 거예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거실에 확트인 거실창이 눈에 띤다.
큰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와 집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들어서는 인아씨와 대명씨를 반긴다는 듯이.
'층이 높아서 확실히 해가 잘 드네.
10년 넘은 아파트라는 걸 감안하면 내부 상태도 나쁘지 않고
벽지 정도만 바꿔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딱히 수리할 건 없고, 그냥 입주청소만 깨끗이 하고 들어와 살면 좋겠네.
거실에서 보이는 뷰도 탁 트여 있어서 개방감이 좋다.'
“여기는 층간 소음은 어떤가요?”
“아이들 많이 살아서 다들 잘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 것 같더라고요. 바닥이랑 천장도 꽤 두껍게 잘 지었어요. 제가 여기 입주 때부터 부동산 하는데 어디서 층간소음때문에 문제 있다고 들은 적은 없네요. 아이들 몇 살이에요?”
“둘 있고 초등학생이에요.”
“이 집 주인은 미국에 살아요. 들어와서 살 생각 없어서 여기 하시면 내내 사셔도 되고 딱 좋겠네.
초등학교 때 이사 다니는 거 요즘 젊은 부부들 안 좋아하더라고요.”
“네. 그렇긴 하죠.”
고급자재에 튼튼해 보이는 벽과 바닥, 거실과 방의 구조도 딱 알맞다. 인아씨는 이 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싼 자재로 수리해 놓은 구축 아파트의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인가 확실히 비싼 아파트는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쉽다. 여기 살면 딱 좋겠는데.'
“방이랑 다용도실도 한번 싹 보세요.”
“전에 살던 분이 깨끗하게 잘 쓰셨네요.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된 느낌입니다. 여기는 가격이 얼마였죠?”
같은 날 같은 날씨. 반포아파트를 나서는 인아씨는 왠지 날이 좀 따뜻해짐을 느꼈다.
아까는 분명 추위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는데,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해서 딱히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지만, 아파트 단지와 집 내부의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쓸쓸하다거나 추워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았다.
“여기서 살면 좋긴 하겠다. 초등학교에 중학교까지 단지에 붙어 있고, 놀 곳도 많고, 상가도 가깝고 커뮤니티 시설도 완전 잘 되어 있지?”
“당연히 좋겠지. 게다가 입지도 진짜 좋잖아. 고속도로 가깝지. 서울 도심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고, 지하철역도 2개나 끼고 있지. 집 값이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런데 나는 여기가 약간 겁나기도 해. 너무 부자들이 많아서 왠지 자괴감 들 것 같아.”
“자괴감은 너무 과한 표현아냐? 찐 부자들 만나게 되면 좀 주늑이 들 수는 있겠지만. 암튼 집은 여기가 딱 좋은데, 당신이 안된다고 했으니 이제는 마음에 들면 계약할 수 있는 예산에 맞춰서 보자. 아쉽고 속상한 마음만 자꾸 들 것 같아.”
“나도 비슷한 마음이야. 세상에 돈 많은 사람 참 많구나 싶어.
우리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까 집 값 아껴야 먹고 사는데 여유가 생기고,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도 부담스럽지 않지."
“그럴 거면 그냥 지금 사는 데가 나은 것 아냐? 전세 보증금도, 월세도 여기보다 훨씬 싸고 매매도 마찬가진데. 꼭 서울 살아야되나...”
“여긴 강남이잖아. 대한민국에서 집 값이 제일 비싼 동네니까 싼 집은 없어. 녹물 나오는 아파트도 지금 우리 사는 집보다 훨씬 비싸다고. 살만한 집 중에서 우리가 감당할만한 집을 찾는 거지. 어쨌든 살아보기로 맘먹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동기부여 팍팍 받으면서 살자. 하하하”
"웃기는!"
직장 다닐 때부터 각자의 통장과 돈은 각자 관리하고 살던 버릇 때문에 인아씨는 퇴사 이후에도 남편의 통장 잔고나 재테크로 부가적으로 생기는 돈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았다. 대강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 알고 있고, 부동산을 사고팔 때는 가격이 얼마다 정도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알아서 잘하는 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월급 받을 때처럼 매달 같은 날, 생활비를 통장으로 받아서 쓰고 있는 인아씨였다. 통장에 돈은 얼마나 있는지, 돈 없어서 이 집에서는 살 수 없다면서 도대체 구경은 왜 온건지 대명씨 말에 동의하면서도 괜시리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우리가 보증금이랑 월세로 낼 수 있는 돈의 최대치가 얼마야? 당신이 생각하는 가격을 대충 알아야 나도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때 참고하지. 아까 봤던 구축밖에 못 산다고 하면 나 엄청 속상할 것 같아. 나랑 아이들은 집에서 많이 생활하니까 아무리 강남이라도 집이 안 좋으면 생활의 질이 떨어지는 기분이라고. 여기 못사는 건 알겠고, 아무튼 너무 오래된 곳은 싫어."
그 이후 몇 차례 더 구축, 신축 아파트들을 골고루 돌아본 후에 인아씨 부부는 이사 갈 집을 정했다. 같은 강남이어도 집 상태나 위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다 비쌌지만 말이다. 부부는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다. 다행히 1970~80년대 지어진 구축은 아니었고, 재건축으로 새로 지은 지 10년 정도 된 조금 안쪽에 위치한 소형 단지였다.
3개월 뒤, 인아씨와 대명씨 가족은 드디어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전입신고도 하고, 아이들 학교도 전학시키고, 서울 주소가 적힌 주민등록증도 새로 발급받았다.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밤이었다.
스스로 벌어서 이만큼 왔다는 사실에,
경제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회사 근처 신도시에서만 살다가 새로 이사온 동네가 그 유명한 강남이라서
동네가 주는 은근한 부담감이 있었다.
거기다 빌려 쓰는 집이 주는 안락함은 아주 포근하지만은 않았다.
잔잔한 조명이 켜진 식탁아래 마주 앉은 두 사람.
대명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두툼하고 믿음직스런 손이었다.
인아씨도 그 위에 손을 얹으며 깍지를 껴 잡았다.
"그래도 강남에 왔다. 그치?
"응. 그렇네. 우리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