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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Aug 22. 2024

강남 구축 아파트

2. 강남에 이런 아파트가 있다고?!

“여기도 보러 가는 거야? 이런 아파트가 아직 있긴 있네. 드라마 같은데 서 본 것 같은데... 아! 아니다 나도 20년 전쯤 살아보긴 했어. 근데 강남에 이 비싼 땅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고 상상을 못 해봤어. 진짜 오랜만이야.”


우리가 신도시 새 아파트에 익숙해져서 그렇겠지. 나도 투자 시작하고 오래된 집, 예전 아파트들 임장 다니면서 처음에는 뭐랄까 낯설다고 할까? 암튼 그랬는데 여전히... 많이 있더라고. 우리가 보러 갈 집은 아파트 자체는 구축이지만 내부 수리도 했고 아무래도 신축보다는 보증금이랑 월세가 훨씬 싸잖아. 한번 보자.”


“난 너무 오래된 아파트는 싫은데... 봐봐 이렇게 자리도 부족한 곳에 비집고 주차할 자신도 없고 들 나가 놀 놀이터도 없잖아.”


“그래 불편하긴 하지. 일단 보기만 해 그럼.”


인아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내부 구경도 하고 가격도 들어볼 겸 오래된 아파트 매물도 몇 개 보기로 했다.


“여기는 1층이라 가격도 잘 나왔고, 도배도 새로 하고 화장실도 수리해 놔서 아이들 키우고 살기 딱 좋아요. 뒷문으로 나가서 작은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바로 초등학교예요.”


부동산 소장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러나 인아씨 마음에 드는 집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현관문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1호와 2호 두 집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집 문 앞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 집안에서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들릴 거다. 택배나 새벽배송을 받으면 문 앞에 쌓인 상자가 오가는 사람들 발에 차일 것 같기도 했다.


삐삐삐삐

소장님이 비어있는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무거운 철문을 끌어당겼다. 모두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 타일의 현관 바닥.

새로 바꾼 LED조명이 너무 밝다. 어두운 것보단 낫지만 은은하고 분위기 있는 조명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밝기만 하다.  

중문이 없고

층고도 낮네.

부엌은 아일랜드 식탁이 없고,

싱크대는 월세용으로 싸게 수리한 상태다.

수납공간이 별로 없네.

2구짜리 가스레인지는 치워야겠다.

인덕션 놓을 자리가......'


'화장실 욕조가 넘 오래되었네.

수리하는 김에 같이 좀 바꿔놓지.

방에도 역시 붙박이장 같은 게 없고.

요즘 아파트가 확실히 수납공간도 많고

내가 옷장 안 사도 되고 좋아.

거실창이 크고 시원하긴 한데......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잖아.

창문도 못 열어 놓고 살겠네.

아이들은 이 집에 오면 뭐라고 하려나?

1층이니까 뛰어도 잔소리 안 해도 되는 것 빼곤…

아무래도 신축이랑 비교가 안된다.

휴우......'


“오래되긴 했어도 누수도 없고 괜찮네요. 도배랑 조명까지 싹 바꿔놔서 깨끗하고.”

그런데 이 싱크대 배수구랑 수전 같은 건 얼마 안 하는데 좀 바꿔주시지. 요즘 싸고 좋은 것 많잖아요. 그리고 1층이라 현관 중문 없으면 밖에 소리도 다 들리고 바깥소리도 들어와서 시끄러울 것 같아요.”


베란다와 다용도실, 화장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나오면서 대명 씨가 말했다.


“그래요? 주인한테 해달라고 말해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여보 다 봤지? 이제 된 것 같아요. 사장님.”


“네네, 요즘 부동산 경기가 안 좋다고 해도 이 동네는 거래가 꽤 있는 편이에요. 매매랑 전세가 가격이 떨어져서 그런가 오히려 생각보다 잘 나가더라고. 여기도 생각해 보고 너무 늦지 않게 계약할 건지 알려줘야 해.”


“네, 그렇겠네요. 다른 단지들도 좀 보기로 했으니까 몇 군데 더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연락 줘요.”


14층, 6층, 1층 세 군데 매물을 보고 단지를 나섰다. 1층이 이 단지에서 본 마지막 매물이었다. 겨울, 흐린 하늘이 왠지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동네 분위기가 쓸쓸하지 않아?”


“응 날이 쌀쌀해서 사람도 없고 동네도 허전해 보이고 그렇긴 하다. 근데 흐린 날, 추울 때 집 보러 다니는 것도 괜찮아. 오히려 집이 따뜻한지 해가 잘 드는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더라고. 투자할 집 아니고 우리가 살 집이니까 더 잘 봐야 해.”


왠지 당신은 투자자의 눈으로 집을 보는 느낌이던데? 난 아이들이랑 살 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안 들어. 새 아파트에 주로 살아서 그렇긴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더 깨끗한 아파트면 좋겠어. 주차도 완전 고난도야. 나 자신 없어.”


여기 안 살아도 된다고, 그냥 한번 보기나 하자고 말은 했지만 막상 집을 보고 나니 뒤숭숭해진 인아씨 마음이 찌그러진 얼굴로 다 드러났다.

 

“그래? 그렇게 별로야? 난 그래도 수리 깨끗하게 해 놔서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당신이 괜찮으면 아무래도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니까 이쪽도 고려해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당신 이렇게 맘에 안 들어하는 것 보니까. 그래도 이제 보러 갈 집은  2015년 이후에 지은 거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으~ 손 시려! 혹시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갈 시간 있어?”


“응, 사서 가지 뭐. 저기 아파트 상가 편의점 있는데 편의점 커피 괜찮아?”


“응, 그냥 따뜻한 거면 괜찮아...”


한 구축 아파트 단지 앞에 선 인아씨. 아파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 애꿎은 날씨 탓을 해본다. 따뜻한 커피캔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온기를 느끼며 다시 한번 아파트 단지를 훑어본다. 동 입구 쪽에 사선으로 늘어선 차들, 그리고 단지 한가운데 두 줄로 평행 주차된 차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면 오른쪽 코너에 재활용 쓰레기 배출장소도 보인다. 그 옆에 오래 자라 밑동 지름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위로 옆으로 멀리멀리 손을 뻗은 나뭇가지는 잎이 하나도 없어서 더 뾰족하고 쓸쓸한 인상을 주었다.


처음 대명씨가 강남으로 이사 가자고 이야기했을 때, 인아씨는 막연히 뉴스에서 듣던 비싼 아파트 단지들을 떠올렸다. 아크로 리버파크, 반포자이, 래미안 퍼스티지. 타워팰리스 등. 그렇게 비싼 곳이 아니어도 당연히 강남이니까 아파트도, 주변도 다 삐까번쩍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후보지로 몇 군데 아파트를 찍어 놓고,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대충의 이미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새 아파트 단지도 많았지만 구축 아파트 단지도 규모가 크고 그 수가 많았다. 미도 아파트, 한신아파트, 미성아파트, 현대아파트 등.


'와 강남에 아직도 이런 아파트가 많긴 많구나. 하긴 그 비싼 압구정현대 아파트도 다 1970년대에 지었다는데 뭐. 내가 뭘 모르는 거였어.'


"여보, 여기 진짜 안 살아도 되는 거 맞지?"


"어. 그냥 한번 봐뒀다 생각해. 그래도 당신 이 아파트들 얕보면 안 돼! 매매가 봤지? 지금도 이 정돈데 재건축되면 어마무시하다고."


"그건 내 집일 때 이야기잖아. 우리는 남의 집에 살 거고."


"일단은 그렇지만, 우리도 돈 더 벌어서 한 채 사면되지 뭐!"


"제발 그러면 좋겠다. 우리 집이면 오래된 아파트여도 왠지 아주 기쁜 맘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네. 내 맘대로 좋게 고쳐서 살면 되는 거잖아."


제발에 특히 힘을 주며, 인아씨는 대명 씨를 살짝 흘겨보았다.


"하하, 일단은 근처에 살면서 노리는 거야.

자꾸 봐야 사고 싶고, 살아봐야 어디가 좋은지 정확히 알 수 있잖아."


"맞는 말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이사 오는 거 동의한 거야. 일단 살아보자. 대신 미안하지만 이 집은 아닌 것 같아! 잘 살려고 돈 벌고 투자하는데, 집에 투자 좀 해주라. 이사 와서 당신이 하고 싶은 부동산 투자도 맘껏 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나도 즐겁게 살아보자고!"


"월세 차이가 많이 난다니까..."


"그래도 여기는 싫다고. 주소는 강남일지 몰라도 집이 영 아니잖아. 돈 좀 쓰시라고요!"


"알겠어! 알겠다고. 절대 여기는 이사 못 오겠네.

자, 그럼 다음 아파트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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