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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Sep 17. 2024

바라던 직장은 아니었지만

9. 인아씨의 첫 사회생활

인아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방송국과 신문사에 취업하기 위해 여러 군데 공채 시험을 보고 있었다.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고, 최종 합격자수에 비해 지원자는 너무 많았다. 방송 3사와 주요 신문사 시험에 보기 좋게 떨어지고, 연합뉴스나 YTN, 아리랑 TV, EBS, 지방 방송사와 지역 신문에도 지원을 했다. 결국 지방 방송국 하나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으나, 계약직이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인아씨 가족이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세계 경제가, 나라 경제가 그렇게 돌아가다 보니, 언론에서는 연일 부정적인 경제지표에 대해서만 뉴스를 전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던 시기. 꿈을 찾아 조금 늦더라도 서울에서 방송국이나 신문사, 안되면 잡지사라도 들어가려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취업 못하는 거 아냐? 마음 같아서는 대학원 진학이라도 하면서 계속 방송국 도전해보고 싶은데, 경제가 이렇게 어렵다니, 대학 졸업하면 바로 취업을 해야긴 해야겠고……지금까지도 이렇게 많이 지원해 주셨는데, 이제는 스스로 자립해야지.’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해내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인아씨는 더 이상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 졸업까지 시켜주셨으니 얼른 돈 벌어서 자립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용돈도 드리고 효도하며 살고 싶었다.


‘언제 붙을지도 모르는데, 대학 졸업하고 나서 취업공부까지 뒷바라지 시킬 수는 없지.’


꿈도 중요했지만, 일년에 한두번 뽑는 방송사에 원하는 직종으로 취업을 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는 현실적인 생각에 신입사원 공채를 내는 다른 기업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삼성, 현대, LG, 네이버, 롯데, 신세계 등 국내 대기업부터, P&G, IBM, 구글 같은 외국계 회사에도 원서를 썼다.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탄탄한 중견기업들에도 열심히 지원서를 제출했다. 언론사가 아닌 일반 기업 공채시험에는 상대적으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급히 필기시험 문제집도 구해서 풀어보고, 인터넷 카페에서 면접 정보도 알아보면서 말이다.


취업 준비를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합격까지의 과정은 우여곡절이라는 말이 딱 잘 어울렸다. 서류 제출할 때, 필기시험을 볼 때, 압박 면접은 또 어떻고……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시험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큐 테스트와 상식, 역사, 수학까지 총망라하는 필기시험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다른 사람들 후기에는 그렇게 자주 나오던 면접 예상질문이 도대체 왜 하나도 맞지 않는 건지, 남들은 몇 군데씩 붙는 것 같은데... 인아씨는 연이어 전해오는 불합격 소식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대기업 하나에서 소식이 왔다. 이메일을 열고 합격자 조회를 해보았다. 콩닥콩닥 심장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아아아아~~~! 나 합격했대!”


“진짜야? 와! 잘 됐다! 엄마는 우리 딸이 잘할 줄 알았어! 너무 잘 됐다!”


2주간의 합숙연수를 끝내고 입사한 회사. 새로 산 정장에 번쩍번쩍 윤이 나는 하이힐을 신고 첫 정식 출근을 하는 인아씨. 긴장되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둘쑥 날쑥, 깊은 한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아닌 척하고 싶지만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영락없는 신입사원의 모습.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었을 것이다. 두근두근 첫 출근의 그 날.


‘다른 데 다 떨어졌어도 하나 붙었으면 됐지. 다들 들어오고 싶어 하는 대기업인데! 언론사가 아니면 어때? 여기서도 뭐든 열심히, 잘 해낼 거야!'


긍정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인아씨는 언론사 입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 회사에서 열심히, 즐겁게 일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기업이라 회사 업무도 다양했고, 개발, 디자인, 영업마케팅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도 만났다. 업무 외적으로 회사 전체에서 하는 행사, 부서 내에서의 작은 이벤트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인재양성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라도 열심히, 잘하면 해외 연수를 갈 수 있고, 석사나 박사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또 해외 주재원이나 파견근무의 기회도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성임원들의 활약을 보면서, 인아씨도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막연한 꿈도 꾸기 시작했다.


“인아씨, 영어 잘한다면서? 이거 팀장님 발표하실 자료인데, 한번 봐줄 수 있어?”


“아 네. 언제까지 드리면 될까요?”


“오늘 점심때까지 가능해? 점심 이후에 다시 한번 리뷰하시고 또 수정하실 수도 있어서.”


“네, 최대한 빨리 검토해서 메일 보내겠습니다.”


“오케이. 고마워!”


공대생, 이과 남자 직원들이 주류를 이루는 IT회사였기에 문과 출신인 인아씨의 영어실력이 자주 빛을 발하곤 했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오거나 원어민 수준은 아니었지만, 같은 팀 내에서는 모두가 인아씨의 토익, 오픽시험 점수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신입사원이었지만 팀장, 그룹장 회의 자료를 볼 기회가 많았고, 해외 법인 미팅이나 출장 준비에도 자주 불려 다녔다.


담당 업무가 있었지만 그 외에 여러 가지 팀 내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 퇴근시간이 늦어지고 야근도 잦았다. 하지만 인아씨로서도 보람 있는 나날이었다. 팀원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 회사 업무를 두루두루 파악하면서 성장한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언론사 입사의 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지만, 일을 배우고, 업무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면서, 월급도 두둑이 받는 회사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회사 사내 웹진과 방송국에서 활동할 기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 임직원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각 부서 소식을 전하고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해 취재도 하는, 그야말로 기자였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작년 임직원 기자들이 썼던 기사도 찾아보고, 연말 결산 행사 같은 것도 보면서 인아씨는 너무 흐뭇했다. 텔레비전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기자가 아니면 어떠랴? 회사 생활을 하면서 꿈꾸던 일과 비슷한 일도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딱 시기도 좋았다. 한창 바쁘게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있었기에, 인아씨는 언론사를 지원할 때의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써냈다.


“부장님, 저 사내방송국 기자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 버렸어요.”


“안 그래도 벌써 부서장한테는 메일이 왔어. 활동을 적극 지원해 달라고. 시간 할애도 해주라고.”


“앗 정말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지원해도 안 뽑힐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축하해요. 인아씨한테 잘 어울려! 재미있게 잘해봐. 나 신입사원시절에는 이런 게 없어서 못했어.”


“와 허락해 주시는 거죠? 감사합니다!”


“당연하지! 이것도 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니까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고 열심히 해봐! 우리 부서 취재도 해주고.”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오후에 있는 발대식 좀 다녀오겠습니다!”


“몇 시? 회의시간이랑 겹치는 거 아니지?”


“회의 끝나고 갑니다. 마무리 잘하고 가겠습니다!”


메인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현수막까지 걸어놓고 제법 성대한 발대식을 할 모양이었다.


“회사 외부와의 소통뿐 아니라 우리 내부 임직원 간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들이 각 현업에서의 소식을 전해주시면 상호 간 이해도도 높아지고, 부서별로 이해도가 높아지면 일의 시너지뿐 아니라 회사 생활의 질도 높아집니다. 즐기면서, 또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활동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커뮤니케이션 팀장님이 직접 발대식의 첫인사말을 열어주었다.


“짧아서 좋네요. 역시 커뮤니케이션 팀장님이라 그런지 우리가 뭘 싫어하는지 잘 아는 것 같죠?”


옆에 앉아 있던 비슷한 또래의 남자 사원이 말을 걸었다.


“아 네. 짧아서 좋긴 하네요.”


“저는 솔루션 개발팀에 있는 김대명입니다.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미리 인사해요.”


“네, 저는 경영지원팀 박인아입니다. 19기 신입사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신입사원!! 저는 18기! 저도 아직 신입사원이에요. 우리 부서에는 올해 신입이 안 들어와서 제가 계속 막내거든요! 아무튼 반갑네요. 반가워!”


이어지는 활동 공유와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꽤나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내 기자 활동.

 

‘역시 큰 회사라 좋구나. 못다 이룬 기자의 꿈도 여기서 펼쳐봐야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바라던 직업도, 직장도 아니었지만 회사 일도 잘 적응한 편이었고, 업무 외에 인아씨가 흥미를 가지고 참여할 회사 활동도 많았고, 대학 때 방송반 동아리 활동하듯이 회사가 인정해 주는 기자 활동을 하면서 지루할 틈 없이 지내는 이런 생활도 좋다고 생각했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열심히 해서 회사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에 뽑히고 싶다는 생각, 커리어 우먼으로 무럭무럭 성장할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는 인아씨의 표정이 더 없이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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