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하다 보면 나도 느낄 수 있을까 <요르가즘>
요가원의 참맛을 알기도 전에 코로나19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이러다 다시 생긴 요가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까 싶어 혼자 수련하는 방법을 찾아보던 중, 제목부터 그림체까지 범상치 않은 책을 한 권 찾아냈다. 미술 전공 요가 강사 황혜원 작가의 에세이 <요르가즘>. 요르가즘은 요가와 오르가즘의 합성어다. 카피에서부터 똘끼 충만을 강조하길래 얼마나 특이한가 읽어보니, 역시. 내가 좋아하는 똘끼가 글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원래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데 요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까지 쓴다니 삼위일체 예술인의 느낌이 가득하다. 생활고를 걱정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보다 작가의 가족과 친구, 애인이 전하는 애정이 커서인지 그녀의 삶이 고단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한 편의 글에 한 동작의 요가 설명, 본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구성의 이 책은 막 요가를 시작한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우연히 요가에 빠져 요가 강사까지 되었지만, 본인의 중심을 누구보다 단단하게 붙들고 있는 젊은 작가의 이야기는 묘하게 흥미로웠다. 살짝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듯한 글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그녀를 SNS(instagram.com/y0rgasm)에서 유명하게 만들었을 그림체가 너무 좋았다. 요가 강사의 구령을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들으며 그저 한 동작씩 따라 하기 바빴는데, 그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까지 덧붙여주니 나름의 깨달음도 생겼달까. 요가 전문책을 읽기에는 어딘가 부담스러웠던 마음도 이 그림들 덕분에 가벼워졌다.
요가의 장점은 많다. 육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매일 수업에서 약장수처럼 떠들어 대지만, 정신적인 이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뭐랄까...... 시를 해석해주는 짓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늙고 아프게 된다면, 연애도 우습고 다이어트도 우스운 날이 오겠지. 그러니 젊고 쌩쌩할 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만큼,
실컷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뭐든 말이다. 그래야 여한이 없을 거 같다. 안타깝고 화가 난다. 나는 분명 눈을 부릅뜨고 죽을 것이다.
애인과의 관계나 친구들 이야기,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이지만, 그 일상을 풀어내는 작가의 감성과 재주는 일상적이지 않다. 과거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도 시도했던 '핸드 스탠드'는 손과 머리를 바닥에 대고 거꾸로 서는 물구나무 자세다. 내 기준에 요가는 그런 자세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수련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그 동작을 꼭 해보고 싶었다. 작가는 '지구를 들어라'라는 제목의 꼭지에서 핸드스탠드에 성공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했다. 책에는 의외로 '전율, 요르가즘'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지는 않는데, 이 꼭지에서는 한중간에 등장했다. 그만큼 작가에게도 전율을 주는 동작이었던 것 같다. 핸드 스탠드에 성공한 짤을 프사로 해두자 그녀의 엄마는 위험해 보인다며 "요가 강사 때려치워!"라고 외쳤고, 그녀는 "요가 하면 뇌가 발달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 꼭지의 마지막 문장은 "지구는 들어도 엄마 말은 절대 안 들어요"다.
몇 년에 걸쳐 요가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서 강사 일을 하기까지 작가는 꽤나 긴 시간 혼자 수련을 해왔을 거다. 매일매일 자신의 호흡과 몸을 들여다보며 연습했기 때문에 이런 그림과 글을 창작할 수 있었을 테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을 충실하게 표현하다 보니 책 한 권이 됐고, 요르가즘이라는 표현도 과감하게 앞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수련을 하며 느꼈던 고통보다는 수련 후 찾아오는 절정의 쾌감이 훨씬 크다는 걸 몸소 느낀 작가가 지금은 부러울 따름이다. 이제 막 요가를 시작했지만 뻣뻣했던 몸이 아주 조금씩 풀리는 걸 느끼는 요즘 자꾸 욕심이 생긴다. 상황이 된다면 유명한 수업도 들어보고 싶고, 마이솔(각자의 호흡에 따라 수련하는 것)도 해보고 싶고.
하지만 요가원의 열 명이 넘는 사람들 중 기본적인 동작도 되지 않는 사람은 나 하나다. 되는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강사의 말을 믿고 내 몸에 집중하고 있는 정도다. 게다가 요즘의 상황에서 욕심을 내봤자 빨리 진도를 나가기도 힘들다. 다만, 나도 언젠가는 수련의 전율, 요르가즘을 느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요르가즘>을 읽으니 어쩐지 용기가 생긴다. 당당한 작가의 에너지를 거름 삼아 오늘도 내 진도에 맞춰 조금씩 몸을 움직여본다. 서두르지 않고 하루하루 노력하는 것이 수련이리라. 요가를 만나서 반갑고, 요가 덕분에 새로운 작가도 알게 되어 기쁘다. 나도 언젠가 요르가즘을 한번 만나보리라.
땀을 듬뿍 흘리고 난 후의 쾌감은 어떤 운동에서든 느낄 수 있지만, 서서히 달아오르다가 꼬르륵 잠이 드는 요가의 여운과는 확실히 다르다. 간지럽던 영혼 어딘가를 벅벅 긁은 듯한 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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