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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Jun 09. 2020

길티 플래저 캔커피와 이별하는 중

레쓰비 친구들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이 망가졌을 때다. 지난 2주간 크고 작은 두통으로 고통받다가 이제 겨우 자유로워졌다. 미미하게 때론 강렬하게 머리를 울리는 두통.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된 이 두통은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운동을 하고 땀을 빼고 스트레칭을 해도 그때뿐.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는 두통의 굴레 속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고통만 끝나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이번에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면 바로 두통이 오니 음식량 줄이기.


기본적으로 위가 작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었으니 건강은 나빴을지언정 살이 찌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른 이후 내 몸은 연비도 나쁘고 기름도 많이 낀 몹쓸 몸이 되어버렸다. 일반인 기준 0.5인분에서 1인분으로 늘어난 양. 남들 보기엔 보통의 양도 내 몸에는 과한 양인 경우가 많다. 거기에 줄어든 움직임. 자연스럽게 몸이 불어나 이제는 예전의 몸매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허기진 상황에서도 두통이 온다는 것이다.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그 적당히가 너무 어렵다.


꾸준한 운동으로 몸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기.


헬스와 요가, 틈틈이 하는 스트레칭은 꾸준히 해왔다. 살을 빼거나 예뻐지려는 운동이 아니고 안 아프려고 하는 운동이었다. 유독 뻣뻣한 몸이라는 건 초등학교 선생님한테도 인정받은 사실이다. 긴장을 잘하고 쉽게 몸이 굳는데 기력은 약하니 운동을 안 하면 안 되는 몸이다. 다행히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운동하러 가는 길이 워낙 험난하다. 게으른 몸을 일으키기가 귀찮았다는 얘기다. 그래도 열심히 운동을 해 온 덕분에 전보다는 많이 건강해졌지만, 몸의 발란스가 조금만 안 맞으면 두통이 찾아온다. 가끔은 허무한 기분도 든다. 이렇게 땀을 뺐는데 왜 또 아픈 거지 싶어서.


순간적으로 혈당을 올려주는 단 음식 끊기.


양날의 검과 같은 마지막 관문 단 음식. 중학교 때부터 먹어온 달달한 캔커피를 이십오 년째 끊지 못하고 있다. 잠깐씩 끊은 적은 있지만, 마시면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파이팅 때문에 자꾸 마시게 된다. 가끔은 이 커피가 알코올이나 마약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새 중독되어버린 약물처럼 눈만 감으면 생각이... 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무척 오랜 기간 장기 복용해왔다. 끈기라고는 없는 성격이면서 캔커피는 참 끈기 있게도 마셨다. 여기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빵과 배달 음식의 세계. 단순 과당이라 불리는 정제된 흰 가루의 노예가 된 적도 있었다. 다행히 과도한 밀가루 음식과는 어렵지 않게 이별을 했지만, 여전히 내 옆에 끈덕지게 붙어 있는 것이 단 음식, 그중에도 단 커피, 나의 길티 플래저인 레쓰비 친구들이다.




음식량 조절과 운동은 어쨌든 평생 끌고 가야 할 방법이다. 어렵지만 나름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마지막 레쓰비 친구들과의 이별은 내게 가장 어려운 과제다. 떨어지는 기력에 기운을 내려고 마시는 달달한 친구들이 없으면 생각만 해도 무기력해질 것만 같다. 순간적으로 확 기운 나게 해주는 방법 중 가장 즐겨하고 좋아하는 방법이 캔커피를 마시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마지막 방법은 이 친구들과 이별하는 것뿐이다. 전문가들은, 단순 당에 의존하는 것이 알코올 중독에 버금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줄이기보다는 확 끊고 대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길게 찾아온 이번 두통을 마무리시켜준 것 역시 마지막 방법이었다. 오일 넘게 단 음식을 아예 안 먹었더니 안개가 걷히듯 두통이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일상의 활기를 위해 마셨던 캔커피가 사실은 내 삶의 질을 야금야금 좀먹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식이조절에 운동도 하니까 저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줄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끊었어야 했나 보다. 단순 과당에 길들어져 내 기분을 그들에게 맡겨버린 것이 화근이었나보다.


여기에 한가지 더 결정적인 이유. 두통도 두통이지만 캔커피는 난임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나니 이제는 진짜 끊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시술때에는 안먹었지만, 평소 한두잔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일종의 길티 플래져를 즐겨왔는데,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 것만큼이나 나쁜 음식을 끊어내는 것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아닌가 반성이 된다. 


남들은 기분전환으로 마시고, 썸 탈때도 마시고, 숙취해소로도 마시고, 심심해서도 마시는 저 다양한 캔커피를 이제 마시지 않기로 다짐하려니 자꾸 미련이 남는다.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이 술을 끊을 때도 이런 기분일까. 내가 안마셔도 여전히 존재할 저 음료들을 이제는 안 본 척, 못 본 척 지나가야 한다니. 이러다 갑자기 고삐가 풀려 여러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셔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단 커피 요요처럼 더 자주 찾게될까봐. 하지만 더이상 두통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이 마지막 방법을 써야한다는 걸 알기에 사실은 진작에 알았지만 더이상 주저할 수는 없다. 


과감하게 세이 굿바이, 레쓰비 친구들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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