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워서 아기를 갖고 싶은 건 아니고
새끼 강아지 영상을 클릭하는 게 아니었다. 주인의 손가락을 물고 빨며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이빨을 긁어대는 영상을 보는 게 아니었다. 갓난아기를 조심스레 다루는 레트리버의 영상에 손을 대는 게 아니었다. 망할 유튜브 알고리즘은 벌써 며칠째 온갖 종류의 작고 귀여운 영상을 나에게 들이밀고 있다. 홀린 듯 영상을 보다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문득 서글퍼진다.
유독 귀여움에 약하다. 작은 아기나 새끼 동물을 보고 심드렁한 사람이 있을 리는 없지만, 유독 귀여움에 취약하다. 나도 모르는 애정결핍이 있나 싶을 정도로. 크고 작은 인형을 모으는 취미도 있다. 손재주가 있었다면 인형을 만드는 취미도 가졌겠지만, 내가 만들면 결코 귀여운 형태를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냥 하나, 둘 사들이는데 만족하고 있다.
지나가는 아이가 예뻐 보이면 결혼할 때가 되었다든가, 아기를 가질 때가 되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가 예뻐 보였다. 내가 기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무뚝뚝한 평소의 성정에 맞지 않는 애교를 모르는 아가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동네 할머니들이 흔히 하는 '아이고 예뻐라~'를 이십 대 때부터 하고 다녔다. 남의 아기에게 오지랖을 부리면 엄마들이 불편해한다는 걸 안 이후로는 자제하고 있지만, 아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복화술로 '아이고 예뻐라~'를 시전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귀여운 걸 좋아해서 아기를 갖고 싶은 건가. 예를 들면, '나만 고양이 없어' 같은 심리. 그럴 리가 없지. 그런 고민이면 이렇게 빡세지 않았겠지.
결혼하던 해인 2013년 시작한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그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육아 예능을 의도적으로 피한 적이 있다. 틀면 나오는 방송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눈길이 닿아있고, 그러다 보면 불쑥불쑥 심술이 올라왔다. 이러다 성격만 더 나빠지겠다 싶어 피했다. 남편이 보는 것도 싫었다. 연예인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보기가 불편했다. 귀엽고 건강한 아기를 보며 넋을 놓고 있는 내가 싫었다.
한 가지 더. 그 아기를 키우는 부모의 초췌한 모습이 부러웠다. 대부분 초보 아빠들이라 작은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당시 육아 예능의 포인트였다. 나라고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보이는 그들의 진심 어린 사랑의 눈빛이 부러웠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자제하고 통제하며 살아야 했을 연예인들도 자기 자식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모습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너무 힘들겠다. 근데 너무 행복하겠다.
어린이가 된 아기들에게선 그 전의 귀여움이 사라진다. 부모에게 체력보다 정신력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조카들만 봐도 그렇다. 어느새 자신의 세계가 생긴 아이들은 부모에게 사랑받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더 혈안이 되어 있다. 또래에게 인정받고 어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제 부모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단단한 어른이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을 해야한다. 다른 차원의 힘든 육아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그 부모들이 부럽다. 클수록 부모를 닮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나는 단지 귀여운 생명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 귀여움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 그저 그뿐이다.
몇주간 진지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코로나에 이어 의료 파업에 따르는 불안감까지. 그러다보니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마음을 힐링하려고 보던 유튜브가 다시 또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서 천만시민 멈춤 주간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지러운 세상에 아이가 태어나게 해도 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물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 연예인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이 없더라'며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동의하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이를 갖고 싶다. 귀여운 아이라면 더 좋겠지만, 귀엽지 않더라도, 분명 사랑스러울 우리의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