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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Sep 18. 2020

자기는 괜찮아?

내 친구는 세 아이의 엄마

범생이었던 친구와 나의 유일한 일탈은 야자시간에 몰래 나가 마트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지방 도시에 기업형 마트가 처음 생겼던 고3 시절엔 그곳이 별천지였다. 여전히 쇼핑을 좋아하는 친구는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꼈다. 나는 그런 친구를 구경하며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 둘 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지만 함께 있으면 천하무적, 세상 시끄러운 수다쟁이가 됐다.


'혼전순결이 의미가 있을까?' 

'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어.'


고작 야자나 빼먹는 여고생 주제에. 연애의 ㅇ도 모르면서. 제법 심각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에 오히려 확신에 찬 언어를 더 많이 뱉어냈던 기억이다. 




운 좋게도 우리는 같은 대학에 진학했고, 룸메이트가 됐다. 친하긴 하지만 성향은 달랐기에 그동안 꿈꾸던 경험을 하느라 각자의 시간을 살았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는 누구보다 바쁘고 성실한 어른의 삶을 가꿔갔다. 몇 번의 연애 끝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귀여운 아들도 낳았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친구는 더 이상 혼전순결이라는 단어에 설레어하지 않았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부단히 노력한 결과 막연히 꿈꾸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나는 여러 번 취업에 실패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오랜 연애를 한 사람과 헤어지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도 이별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도전에서 낙방하고 답도 없는 스물아홉을 맞이했다. 같은 출발선에 서있었다고 여겼지만 십 년의 시간은 우리의 노선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환상만을 쫓던 내가 한심해 보일 법도 했을 텐데, 친구는 한 번도 내 삶의 방향을 지적한 적이 없다. 당장의 상황에서 내가 하면 좋을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 적은 있지만 강요한 적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내 길을 응원해주었다. 




물리적으로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십 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더욱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친구는 그새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아 세 아이를 가진 워킹맘이 되었고, 나는 아직 아이 없는 주부로 살고 있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의 집 근처로 터를 잡은 친구는 당분간 그 지역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한다. 운전을 무서워했지만 출퇴근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새 차를 장만하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려면 비교적 자유로운 몸을 가진 내가 움직여야 한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짊어질 삶의 무게를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전업주부로 두 명의 조카를 키우는 새언니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 일이 생기는데, 셋이라니. 하지만 가끔 고향에서 만나는 친구는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힘들게 말하지 않는다.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무게를 나에게까지 넘기지 않으려 한다.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의 사정, 친정엄마와의 다툼까지.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 말들이 나를 무겁게 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친구는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 끝에 나온 결정적인 한마디.


'자기는 괜찮아?'




난임을 고민하면서 남편을 제외한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삭이며 지내왔다. 그런데 친구의 괜찮냐는 말에 처음으로 울컥했다. 오랜 세월 믿음과 애정을 나눈 친구가 건네는 안부 한마디가 이렇게 마음을 울릴 줄 몰랐다. 친구는 아이가 있으면 좋아, 없어도 괜찮아 같은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마음 상할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았던 건 친구의 배려였다. 그래서 친구가 조심스레 물은 진심 어린 안부가 더 크게 가슴에 와 닿은 모양이다.


'자기는 괜찮아?'

'응. 괜찮지.'


가끔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한 사이. 풋풋했던 어린 시절의 우정은 무럭무럭 자라 농익은 열매를 맺었다. 더 이상 설레는 들뜸은 없지만 안정감이라는 소중한 감정이 우리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다. 나는 난임 주부, 내 친구는 세 아이의 엄마. 가는 길이 달라도 우리는 친구다. 나는 내 친구가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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