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lna Oct 07. 2021

데리러갈게

왜.  '데리러갈게'라는 노래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 제일 설레고 기분 좋은 말 하나를 꼽으라 하면, 나는 이 말을 꼽겠다 "데리러갈게."

비슷한 변형도 많다. 데리러 왔어, 바래다줄게, 같이 가자.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푸훗, 하고 웃음부터 난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길이 없고, 꾹 다문 입 사이로 바람이 새는 걸 참을 길이 없다. 정말 너무 설렌다!  온 얼굴을 일그러뜨릴 만큼! 바로 대답하지 못할 만큼!


이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애정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나를 데리러 오면서 네가 써야 할 시간, 네가 겪어야 할 수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무릅쓰고 달려올 만큼 내가 너에게 크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 네가 나를 데리러 와서 우리가 함께할 시간. 이야기. 웃음. 그런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아,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렌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억지로 들뜬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대답하는 것이다.

잔뜩 신이 나고 설렌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정마알? 고마워엄'.

물론 말 끝에 기이일게 묻어나는 애교는 어쩔 수 없다.




근데 이 말 좋아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내 어린 손님들도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얘넨, 이 말이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여튼 늘 생각하지만, 어린 손님들은 모르는 게 없다.





1.

화요일은 3학년, 6학년 수업으로 하루가 꽉 찬 날이라,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더군다나 요즘엔, 쉬는 시간을 축소해 5분 간격으로 수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쉬는 쉴 틈 없이 다섯 시간의 수업 마라톤을 뛰게 된다. 항상 웨이팅이 있는 맛집처럼, 1교시가 끝나기 전에 2교시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화요일이면 늘 마음이 지친다.


그런데 그날은 3학년이 생태 숲으로 체험학습을 간다는 거였다. 야외로 가는 아이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오랜만에 생긴 '여유'에 기분이 퍽 유쾌했다. 밀린 업무도 처리하고, 수업 준비도 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선생님!


삐삐머리를 야무지게도 땋은 N이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게 아닌가. 현장학습을 자랑하러 온 참인가 보다, 아이고 신이 났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미소 지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현장학습 가지요? 조심히 즐겁게 잘 다녀오..."

"선생님 현장학습 같이 가요! 데리러 왔어요!"


갑자기 훅, 하고 꽂힌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N이 한 번 더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데리러 왔어요! 빨리 가요!"


짓고 있던 미소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커다란 파도가 밀려왔다.

아이들한테 현장체험학습 날은 아마, 몇 안 되는 신나고 기대되는 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동하는 버스 안, 고르고 골랐을 간식, 새로운 장소에 내딛는 발걸음, 부모님의 정성스러운 도시락까지.

얼마나 설레고 기다렸겠는가.

그런데 그런 N이 설레며 기다린 것 중에, 나와 함께 가는 것도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감동이었다.


우리는 즐거운 일을 겪으면,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아, 그 사람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걸, 그 사람과 다음에 같이 와야지. 하고 생각한다.

나는 N의 그런 소중한 누군가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한 채.

음악 선생님이랑 같이 가야지, 하면서 즐거워했을,

내가 선생님 데리러 가야지, 하면서 뿌듯해했을 N을 생각하니 너무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마음을 가진 줄도 모르고, 여유가 반갑다고 생각했다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 어머... 미안해 N. 선생님은 오늘 6학년 언니 오빠들 수업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그래도 재미있게 갔다 오세요. 알겠지요?"


내가 한 말은 N이 한 말에 비하면 엄청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사과였다.

N의 얼굴에 스친 역력한 실망감을 달래줄, 뭔가 멋지고 근사한 말을 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N은 네에- 하는 콩만 한 목소리의 대답만 남긴 채 버스를 타러 떠나버렸다.

창밖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보면서 문득, N이 상처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몇 해 전의 일이다. 2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의 일인데,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병원도 다녀오고, 조퇴를 쓰고 꼼짝없이 누워있어 봐도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그날은 아침부터 너무 기력이 없었다. 목소리를 조금만 크게 하려고 해도 머리가 울렸다.

결국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오늘 몸이 되게 안 좋아요. 좀 작게 이야기해도 될까요?"


우리 반 아홉 살들은 네에- 하고 우렁차게 대답한 뒤, 병원을 가세요, 보건실 가세요 하는 말을 몇 마디 던지고는 금세 자기가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날이었기에,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없이 오후 수업을 마치고, 알림장 검사를 하고, 아이들을 집에 보내려는 찰나였다. J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J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러블리 보이' 그 자체였다.

하얀 얼굴에 새카만 눈동자를 반짝이는 J는 늘 헤헤헤, 하하하, 히히히, 하고 웃고 있었다.

내 책상 옆에 늘 붙어 서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다가도 헤헤헤.

친구들이랑 놀다가 넘어져도 히히히.

숙제를 안 들고 와도 안 둘고 왔어요~ 하며 하하하.

그래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쩔 수없이 같이 웃게 되는 아이였다.


심지어는 삼 형제 중에 막내여서, 아침이면 늘 저보다 키가 훨씬 큰 형들과 학교를 오곤 했는데,

학교 오는 길에도 양쪽 손으로 형들을 붙잡고 헤헤헤하고 있는 걸 보곤,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J를 보고 있으면  (물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신께서는 어쩜 저 아이의 콧물마저도 저토록 사랑스럽게 만드셨단 말이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쭈뼛거리며 '숸쇙니이이이임- (늘 이렇게 발음을 뭉개뜨렸다.)'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J가 조그만 쪽지를 내밀었다. "쉔쇙니임 이고 편지에요오-." 그리고는 쌩- 하니 달려 나가 버렸다.


쪽지를 열어본 나는 그야말로 빵- 터지고 말았다.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제가 병원 갓이 가줄게요.'


기력은 없는 와중에, 어찌나 웃었던지 머리가 뎅뎅- 울렸다.

수첩에서 찢어낸 종이, 또박또박 썼지만 엄청 큰 글씨, '갓이' 가 준다는 말까지. 완벽하지 않은가.


아마 J는 자기가 아팠을 때, 엄마나 아빠의 '병원 같이 가자.' 하는 말이 생각나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자기가 아프고 힘이 들 때 따뜻하게 느꼈던 말을 적어서 나한테 주면서, 나를 위로하고자 했으리라.

아프지 말라는, 자신이 병원도 같이 가주겠다는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촉촉하던지

그 말속에 담긴 J의 나에 대한 염려와 애정이 어찌나 크고 감사하던지.

그다음 날부터는 멀쩡한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아홉 살짜리 보호자를 대동하고, 병원에 방문한 최초의 교사가 될뻔했다.





3.

흔히, 아이들은 사랑을 주어 키워내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무한정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자라나는 게 아이들이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애정보다,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애정이 훨씬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유별난 무언가를 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인 호의를 베푼다.

그런 애정이 유독 진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내가 진짜 사랑을 주어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사랑을 준 덕분에 내가 자라나고 있는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




매거진의 이전글 잔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