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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Oct 22. 2021

괜찮아(1)

#우리가 #우리를 #키우는 #순간

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소음에는 금세 익숙해져 버린다.

큰 소리로 책 읽는 소리, 리코더 부는 소리,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 까르르 웃음 터뜨리는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한데 섞여 항상 일정 수준의 데시벨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평소엔 시끄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고 나면 문득 깨닫는다. 원래 학교가 이렇게 무섭도록 고요한 곳이었군 하면서.


어찌 됐든, 소란하고 시끄러운 학교 안에서 무언가 작은 ‘소리’를 포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학교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서야 대부분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나는 s가 그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s는 항상 어딘가 덤덤하고 평온해 보이는 아이였다.

 말수가 많지도, 활발한 편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s는 늘 수업 시간에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었는데, 그건 그 아이가 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늘 무던하고 변화 없는 표정으로 공부하다가, 까끔 느릿느릿한 말투로 한 번씩 발표하곤 했다. 칭찬을 해주어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대신, 기복은 없었다. 늘 열심히 했다.


그런 s는 그날도 예의 그 무던한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개별 활동을 안내하고 나서  교실을 한 바퀴 둘러 가운데에 섰더니 s의 표정이 영 불편했다.

곧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이랄까? 얼굴을 대단히 미묘하게 일그러뜨리면서 버티는 느낌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가?

얼른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선생님,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계속 들려요.”


눈동자를 흔들며 그 말을 하는 s의 얼굴에서 분명한 감정이 느껴졌다. 불안, 그건 불안이었다.



내 교실은 고속도로와 이어지는 큰 도로와 바로 인접하고 있는데, 그래서 사실은 차들이 다니는 소리가 상당히 시끄러운 편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때문인지, 유난히 앰뷸런스 소리가 많이 났는데, 수업시간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s는 그 희미한 앰뷸런스 소리를 듣고 꽤나 강한 불안을 느끼는 것 같았다.

뭐라 말을 건네어 아이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이 작은 소리를 어찌 들었을까. 앰뷸런스 소리를 듣고 왜 불안한 걸까. 혹시 관련되어서 나쁜 기억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왜 그런지 물어보기도, 모른척하고 나중에 이야기하기도 애매한 게 아닐까.


게다가 나 역시 앰뷸런스 소리를 들었을 때의 불안을 알았다. 누군가 위급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심란함.

나이가 들면서 그 마음이 덜하긴 했지만, 누군가 생사를 오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혼란한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설마 이 아이가 내가 느끼는 이 마음까지 다 느끼는 건가? 깊은 상처가 있는 건가, 하는데 까지 생각이 뻗치자 입을 떼기가 더 어려웠다.


“s,  앰뷸런스는 아마 큰 일은 아닐 거야. 코로나일 수도 있고, 뭐....”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면서 조심스레 말을 건네보는데, 내가 듣기에도 내 말은 핵심을 겉도는 것이었다.

아이의 불안이 전혀 가시질 않아 보였다.


“왜요? 앰뷸런스 소리 났어요? 앰뷸런스 무섭대요?”

온 교실을 돌아다니던 m이 큰 소리로 말했다. 새까만 얼굴에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m은 사실 모범생이라곤 절대 볼 수 없는 친구였다.

평소에 종종 친구들을 놀리던 말을 하는 일이 있었기에, 괜히 s에게 뭐라고 상처를 줄까 봐 제지시키려는데.



“야 그럼 괜찮지!”

좀 더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야 s!  앰뷸런스 탔으면 탄 사람은 병원 가니까 산거야!

  선생님 우리 할머니도 갑자기 쓰러졌는데 앰뷸런스 옆집 할머니가 불러줘서 바로 타서 살았어요!

  병원 빨리 가려고 시끄럽게 하는 거야”


나와 s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당당하게 외치는 m의 목소리가 퍽 진지하고 의젓했다.

어찌 된 일인지, m은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s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했다. 생각지 못한 침투에 내가 어버버 거리고 있는 동안

m은 쐐기를 박아 s를 그의 불안에서 건져주었다.


“ 괜찮아! 앰뷸런스 못 탄 사람이 큰일이라니까? 앰뷸런스 소리가 많이 나면

 119 아저씨들이 사람을 많이 살리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나는 s의 굳었던 얼굴이 푸스스 풀어지는 걸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s가 왜 그렇게 앰뷸런스 소리를 듣고 불안해했는지, 무엇을 떠올렸던 것인지,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던 건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또 어떻게 m이 친구의 얼굴만을 보고 금세, 앰뷸런스 소리가 무섭구나 하고 알아차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대신 아이들끼리는 공유하는 어떤 경험과 마음이 존재하기도 한 다는 것.

 어떤 감정적 고통 속으로 빠질 때, 나처럼 생각 많은 어른이 이것저것, 가능성을 재는 것보다

무작정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 을 배웠을 뿐이다.



새 학기면 나는 늘 동반성장이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우리 서로서로를 키워내는 중이라고,

그날 m은 s를 키웠고, 또 그 둘은 나를 한 뼘 더 키웠다.




+” 야 근데 앰뷸런스를 무서워하다니  아직 애기네 크크크크크크! 나를 형님으로 모셔라!”


 앰뷸런스 소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정립해주신 10살 소년 m의 마지막 발언, 아이고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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