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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Nov 08. 2021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

#너희는 #너무 #귀여워

G가 학교를 안 왔다. 왜 안 왔대? 하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M이 나서서 종알종알 이야기한다.

“몰라요. 아침에 오니까 안 왔어요. 아프겠죠 뭐.”


퍽 귀찮은 듯한 무심한 말투다. M이 어깨를 크게 으쓱하는 걸 쳐다보았다가, 문득 G의 얼굴이 생각났다.


꼭 어떤 만화 속에서, 역경을 헤치고 영웅이 되는 주인공의 ‘똑똑한 친구’ 일 것 같은 얼굴.

또랑또랑한 눈동자, 똥그란 뿔테 안경, 야무지게 묶은 머리, 꼭 그만큼 야무진 목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딱인데.


그런데 사실, G는 공부에는 그다지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 내내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를 하거나, 쪽지를 써서 친구 서랍에 넣어놓기 일쑤였다.

그마저도 어려울 땐 세상 따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G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 시간용’ 취미는, M의 얼굴을 쳐다보는 일이었다. 그것도 되게 티 나게.

꼭 M의 바로 뒷자리나, 그 옆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M 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꼭 M의 얼굴이 재미난 영화라도 되는 것처럼.



처음 G의 시선 끝을 따라가 M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시선이 우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얼른 G를 불렀다. 선생님 여기 있단다, 이쪽을 봐주렴 하고.

하지만 그 열렬한 눈빛이  계속되자, 그리고 그것이 매번 똑같은 방향인 것을 알게 되자,

나로서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사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황홀하게 눈빛을 반짝거리는 G를 보고 있노라면,

나를 쳐다보던 따분한 눈동자가 떠올라 세상 섭섭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M을 향한 그녀의 애정은, 누가 봐도 알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M은?


M은 10살치고는 꽤 키가 크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또래의 흔한 다른 남학생들처럼 무작정 복도 위를 뛰어다니지도, 친구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재미가 있고, 젠틀한 면이 있는 그런 아이.

내가 10살이었어도, 이런 애를 좋아했을 거야, 싶은 마음이 든달까?



하지만 M은 G에게만은 유독 냉정하게 굴었다.

자신을 향한 G의 뜨거운 눈빛도, 옆자리에 앉자는 청탁도, 몰래 보내는 쪽지도 늘 단칼에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아잇, 정말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야! 하는 면박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의 G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도 G가 안 왔어? 어디가 아프대?"

며칠 뒤에도 비어있는 자리를 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친구들도 잘 모르는 듯싶었다.

우리 G가 많이 아픈가 보다, 아이고. 하는 내 말끝에 불쑥, M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목소리는 멀쩡하던데요?"

"통화했어?"

"몰라요. 어제 전화 왔는데 어디 아픈지는 말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했어요"

"전화 왔어?"

"몰라요! 어디가 아픈지를 말해야지, 뭐하냐고만 계속 물어보던데요?"

"너한테?"

"네! 뭐하냐고요~~ 이렇게 했어요."

“뭐하냐고 했다고?”

“네에! 전화 어제도 오고 그그 앞날에도 와서 뭐하냐고 했어요”



예의 그 귀찮은 듯 무심한 말투지만, 무언가 조금 달랐다.

분명 잔뜩 성가셔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린달까?


그러니까, 나에게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M이 그린 그림이 대충 어떤 색깔일 것이다, 하는 막연한 짐작이 있었다.

그런데 바람결에 살짝 뒤집어 보일뻔한 것이, 내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게 일방향이 아니란 말이지.

왜 걔는 니한테만 전화하냐? 하는 다른 아이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며칠 뒤, 드디어 G가 학교로 돌아왔다.

많이 앓았는지 동그랗던 얼굴이 조금은 뾰족해진 듯싶었다.

우리 G 왔어? 하고 물으니, 네에- 성생님 학교 넘무 오고싶었어용 하고 또랑또랑 입술을 굴린다.


어디가 아팠어? 했더니, 저요오 감기 걸려가지고요 기침 엄쳥 많이하고요오, 콧물나고요오 또요....

손가락을 꼽으며 자신이 어디가 아팠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구구절절 읊는 G에게 픽- 하고 M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잠바를 입고 다녀야지! 맨날 잠바도 안 입고 돌아다니고!

 접때 체육시간에도 선생님이 잠바 입고 나가라고 했는데 그냥 가니까 감기 걸리지. 내가 못살아”


G가 앉은자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M의 말투에 걱정이 잔뜩 묻었다.

그때야 말로, M이 자신의 그림을 완전히 뒤집어 보여준 순간이었다.

M은 M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G를 염려하고, 애정을 쏟고, 챙겨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 걱정 많이 했구나? 뭐야아? 하고 빙글빙글 놀려보려다가, 긁어 부스럼일까 싶어 그만두었다.

대신에, 아니야앙, 입으려구 했눈뎅엥. 있쟈냐아....  하는 G의 말을 들으며, 푸스스, 웃고 말았다.


재채기와 사랑은 절대 숨길수가 없다더니

둘 사이에 숨은 새싹 같은 애정을 발견한 나까지 하루 종일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아니이! 평!화! 평평한 할때 평이라고오!”

“히잉 모르겠옹... 써서 보여줭.”


귀찮다면서 굳이 옆에 서서 학습지 작성을 돕는 M과,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헤실거리며 도와달라는 G 중에

누가 더 귀여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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