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오래 봐야 진짜를 알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by 참읽기

The closer you look, the more you see.


수하야,

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이전에도 여러 번 봤다고 했어. 그림책, 짧은 동화, 팝업북으로. 완역본으로 읽어보니 다른 부분이 있었어?

“내용은 똑같은데,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 아니었어. 내용이 다른 건 없거든. 근데 구체적으로 설명이 훨씬 더 많아.”

“어떤 게 구체적으로 설명이 많아?”

“짧은 책에서는 ‘주스를 먹고 커졌다.’고 말하고, 그림으로 '나를 마셔요' 그려져 있거든. 그런데 완역본에서는 앨리스가 음료를 마시고 나서 느낌, 커지고 나서 달라져 보이는 게 구체적으로 나오는 거야.”



“주스 마시고 나서 작아졌을 때는 동물들을 만나잖아. 짧은 책에 그 장면도 나왔어?”

“생쥐랑 대화한 건 나왔는데 ‘자기 고양이가 생쥐를 잘 잡는다’ 처처럼 동물들이 빈정 상할 수 있는 그런 대화를 막 한 거는 몰랐어.”

“그 장면이 웃기잖아. 앨리스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자기 고양이 얘기해서 결국 생쥐들이 다 도망갔지. 그렇게 앨리스가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거 보면 되게 웃겨. 읽는 우리는 재미있지만 주요 줄거리하고는 관계없지.”

“근데 이런 게 나와야 재미있지.”

바로 그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은 줄거리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책이야. 앞뒤가 안 되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



엄마는 수하랑 매일 마주 보고 얘기하니까 수하를 자세히 알아. 말하다 혼자 재미있어서 웃어. 동생을 귀여워할 때 얼굴을 꽉 만져, 엄마한테 안길 때 오른쪽으로 폭 감겨, 자다가 일어나면 짜증 내, 피아노 칠 때 집중했을 때는 입을 벌리고 있어, 씻고 나와서 기분 좋으면 춤을 춰. 그런데 그거는 수하를 소개할 때 주로 얘기하지 않아. 알면 진짜 매력적이고 재미있지만, 줄거리에 들어가지는 않는 부분. 가까이서 자세히 본 사람만 알게 되는 부분이지. 그래서 완역본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책이 훨씬 재미있는 거야.



그렇게 가까이서 알고 있는 너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그 모습이 아니면 어떻겠어?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경험을 해. 몸이 생쥐처럼 작아졌다가, 다시 지붕에 닿을 만큼 커졌지. 어느 때는 목만 너무 길어져서 새가 앨리스를 뱀이라고 부르기도 했어. "너는 누구니?"라고 물었을 때 앨리스는 "저도 자꾸 몸이 바뀌어서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해. 네 몸이 막 변하는 상황에 "너는 누구니?"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그냥 수하라고 대답할 거야. 왜냐하면, 나는 그냥 수하고 생각도 수하거든. 몸은 수하가 아니어도 나는 수하야 그런데 막 몸 크기가 바뀐다고 해도 내가 수하가 아닌 건 아니야. 내가 토끼가 돼도 나는 수하야. "

"누군가가 ‘네가 수하인지 어떻게 알아봐?’라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 ‘목이 길어서 뱀 같아 보여. 이렇게 목이 긴 여자애를 본 적이 없는데?’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까? "

"내 속은 나니까 나는 수하야."



그래. 겉모습이 달라진다고 해도 너를 바꿀 수는 없지. 엄마는 그걸 헷갈렸던 때가 있었어. 너를 낳고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큰 존재가 된 줄 알았어. 그러다 하루 종일 젖 물리기 좋은 후줄근한 옷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있으며 내가 뭘 좋아했는지 몰랐어. 네가 울까 봐 도둑 샤워하면서 내가 바뀐 것 같았어. 경력단절녀라는 말이 무서웠던 시절, 내가 뭐 하던 사람인지 기억 못 했어. 내가 계속 바뀌고 있다고 느꼈고 나는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생각했어.



너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며 나도 한 걸음씩 걸어 나가고, 네게 책을 읽어주려고 그림책을 배우고, 너와 온몸으로 놀면서 피어났지. 엄마의 삶을 줄거리로 말하면 별거 없어 보일 거야. 앨리스는 언제나 앨리스이듯, 변해온 모든 장면이 겹겹이 쌓여서 지금의 엄마가 되었어. 겉모습이 바뀐다 해도 나는 늘 나라는 걸 10년을 겪고서야 알았어. 오래 걸렸지?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반짝이는 장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단다.



이상한 나라에서 정말 갖고 싶은 게 생겼어. 연도만 쓰여 있는 시계. 시간이 없이 그냥 연도만 알고 싶어. 몇 시인지 확인한다는 건 그만큼 바쁘다는 뜻이지. 바쁘게 무언가를 계속하다 보면 가까이서 여유롭게 수하를 볼 수가 없잖아. 수하가 지금 몇 살인지만 알아도 돼. 수하의 순간, 나의 순간을 느끼며 살면 좋겠어. 그렇게 진짜 나를 알아가고, 진짜 너를 알아가고 싶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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