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카페에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지금까지 걸음을 비축한 덕에 오늘은 22킬로미터로 어제보다 5킬로미터 정도 짧다. 30분 정도 걸으니 비아브랑카다. 비아브랑카까지는 해바라기를 수확한 후 끝 뿌리 부분만 남은 쓸쓸한 들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수확이 끝난 후의 들판은 된서리가 내리길 기다리며 겨울에 들 준비를 한다. 열매를 누렸으니 눈과 찬바람을 수용하며 동면에 드는 것이다.
동면
이차선 도로가 관통하며 부르고스로 향해 있는 길을 지나 오까산으로 올랐다. 12킬로미터의 산길을 네 시간 정도 걸어 산 후안 데 오르테가로 넘어가는 길. 오까산은 지속되는 산중이고 중세 때부터 도 선생들이 종종 순례자들의 짐을 털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왠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생각 외로 호젓하고 아름다운 산길이었다. 완만한 능선과 계곡을 품고 있어 걸음도 지루하지 않았다. 굴참나무 숲을 한참 지나니 소나무 숲이다. 숲에 수북이 쌓여 있는 솔잎들. 문득 긁고 싶어 진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방과 후 소일거리는 땔나무를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나 공부보다는소나무가 많은 산에서는 갈퀴로 솔잎을 긁고 덤불이 많은 산에서는 낫으로 덤불을 베어 오는 일을 했다. 두세 시간 모은 나무를 새끼로 단단히 묶어 한 둥치를 머리에 이고 가 부엌에 부려놓으면 늦은 저녁 들일을 마치고 귀가한 어머니는 평소와 다른 높은 강도의 칭찬을 해 주셨다. '오메 내 딸 나무해놨네~' 어쩌면 그 칭찬이 고팠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오히려 공부는 해서 어디다 쓸 거냐고 지천을 듣고...
그런데 갈퀴나무, 즉 솔잎을 긁어모을라 치면 면소재지 파출소에서 순사들이 쫒아나오곤 했다. 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땔나무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던 때였다. 솔잎은 불의 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타는 속도가 더뎌 땔감으로 그만이어서 70년대 농촌 가정들의 난방과 음식을 하는 데 사용되는 주된 자원이었는데 지원 대안 없는 금지는 왜 했었는지 지금도 궁금한 일이다.
어떤 동창이 등산을 하면서 수북이 쌓인 솔잎을 볼 때마다 ‘긁고 싶어 미쳐부러야’ 라고 말해 빵 터진 적이 있지만나는 그 말이 슬프기도 했다. 나무를 했어야만 했던 시절, 나무를 하면서 쫓겨 다녀야만 했던 일, 그래서 맘 놓고 해 보지도 못했던 그 일들이,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일들이 못 이룬 꿈처럼 남아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오까산의 갈퀴나무
드디어 오까산을 내려오니 산 후안 오르테가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묵는다. 우리는 전날 더 걸어놓았으므로 5킬로미터를 더 가기로 했다. 그래도 20킬로미터 이내다. 아헤스를 지나서!아헤스는 작은 동네이지만 집 창틀과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국화나 제라늄 등 가을꽃들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고 마을을 둘러보았는데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꼼꼼하고 밝은 성정들이 보이는 듯했다.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로 와 닿아서 걸음이 따듯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비포장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걷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속도를 최대한 낮춘다. 흙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무거운 걸음에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헤스를 거쳐 오늘 목적지인 아타프에르카에 도착했다. 아타프에르카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류가 발견된 곳이어서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관광객들이 오곤 한단다. 그 때문인지 이 마을이 역시 환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환영
배치해준 방에 배낭을 내리고 재빠르게 씻고 손빨래를 한다. 탈수기가 구비되어 있지 않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한 번씩 사용하려면 6유로를 내야 하기 때문에아직 해가 중천일 때 얼른 옷가지들을 빨아 말려야 한다. 세 시에 문을 닫는 식료품점에 부랴부랴 들러 계란과 토마토, 맥주 한 캔, 베이컨, 올리브를 사고얼마 전에 사놓은 1킬로그램 짜리 쌀을 두 줌 정도 담가 두었다가 밥을 했다. 거기에 달걀 토마토 볶음, 베이컨을 곁들이니 진수성찬이었다. 오후 네 시, 11유로에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해결한다. 야식 문화에 물들어 있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홉 시경 배가 고프겠지만 휴식을 잘근잘근 씹으며 숙면에 들면 될 것이다. 오늘도 헤아릴 수 없는 별이 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