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4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만약에 세 번 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면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다들 당황했지만, 이내 재밌는 질문이라고 생각을 하며 상상에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몇 사람에게 돌아가며 질문을 던졌고, 참신하고 재치 있는 답변에 다들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한 번쯤은 부자의 삶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백만장자가 되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세우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해저를 탐방해서 미지의 세상을 발견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다 나는 노트에 모험가, 선생님, 킬러라고 적었다. 짝꿍이 내가 쓴 단어를 보더니 "킬러? 웬 킬러? 너 엊그제 007 봤지?" 하며 들고 있던 샤프로 노트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몰라. 그냥 생각하다 보니 써버렸네."라고 멋쩍게 웃어버렸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 종종 또 다른 삶에 대해 생각을 할 때 나는 여전히 같은 단어를 생각한다. '모험가, 선생님, 킬러.'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우주의 시각으로 본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가 영상 콘텐츠를 볼 때 보고 싶은 부분만 클릭하여 그 구간만 볼 수 있듯이, 시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시간과 우주에 대한 연구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기에,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이 가설이 참 흥미로웠다. 지금 이 순간과 과거와 미래가 사실 엇물려있다면, 나도 모르는 새 또 다른 생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것 아닐까. 100년 전, 어느 나라에서 지금과는 다른 생을 살아가는 나와, 100년 후 또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생을 살아가는 나와 지금의 내가 이어져있지 않을까, 어떤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100년 전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을 해본다. 유럽에 속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상하게 유럽에 가는 걸 좋아하니까. 유제품을 좋아하는 것도 그것 때문일까.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했겠지. 쾌활한 성격이지 않았을까. 간혹 글을 쓰고 투고를 하며 돈을 벌고 손재주가 좋아 물건을 고치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누군가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좋아했을 테고. 집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인테리어를 하고, 책장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책들을 가득 꽂아놓으며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일상생활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자 전쟁에 대한 생각도 엇물리기 시작한다. 100년 전이었다면,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겠지. 전쟁에서 살아남았을까, 참혹한 현장들, 무수히 많은 시체와 두려움을 목격했겠지. 나도 사람에게 총과 칼을 겨누었을까. 많이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돌본 다음 한 차례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슬픔에 잠겼겠지. 그 안에서도 나는 글을 썼을 것이다. 참혹함과 고통과 인간의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해서.
'모험가, 선생님, 킬러.'라는 단어가 다시 맴돌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안에서 나는 모험가이자, 선생님이자, 킬러의 모습으로 항상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년 전 전쟁 속에서, 100년 후 일어날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은 인터넷 속 보이지 않는 총과 칼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언제든 무기를 들 수 있는 킬러가 될 수 있으니까. 이 거대한 순환이야 말로 인간이 반복하는 삶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순간순간에 모험가이자 순교자로, 교육자이자 학생으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살아가며 생을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게 삶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재미나고 신기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