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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과 싸우는가

영화 <콘클라베>

by 김채미 Mar 14. 2025

 바티칸에 추기경들이 모두 옷을 갈아입고 성당 안을 들어선다. 성당에 모든 문이 잠기고 많은 사람이 성당 주위로 모여든다. 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오늘부터 콘클라베가 진행됩니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추기경들은 성당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데요, 과연 교황은 언제, 누구로 선출이 될까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수석 추기경 로렌스는 창문으로 소란스러움을 지켜보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콘클라베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는 불과 몇 분 전, 교황 후보 1순위인 트랑블레 추기경의 자격을 전 교황이 사망하기 전 박탈하였다는 비밀을 전해 들었다. 이에 극 보수파인 테데스코와 이를 저지하려는 그의 동료 벨리니의 무모한 행동들과, 전 교황이 비밀스럽게 추기경으로 임명했다는 베니테스의 존재까지 나타나며 로렌스는 혼란에 빠진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의 바람대로 콘클라베가 올바르게, 정직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로렌스의 근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추기경들의 비리와 부패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첫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아데예미 추기경은 젊은 날, 한 수녀와 관계를 가지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녀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뒤이어 2위를 차지했던 트랑블레 추기경은 돈으로 자신의 표를 매수했다는 사실과 추기경 자격이 박탈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보수파인 테데스코는 이게 다 진보파의 탓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로렌스의 친구 벨리니는 보수파를 저지해야 한다며 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주고자 한다. 무엇이 종교인가, 종교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과 싸우는 것인가. 혼란에 빠져있는 로렌스에게 이단아처럼 등장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추기경 베니테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저는 제 소신대로 투표를 할 겁니다. 제가 원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고 싶지, 사상과 의견에 휩쓸려서 하고 싶지 않아요." 베니테스의 말에 로렌스는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교회 내부는 아수라장이다. 심지어 바티칸 교회 근처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교회의 일부 역시 파괴되어 추기경들이 모두 대피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테데스코는 이 상황에 힘을 입고 추기경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만 볼 겁니까?" 수많은 문제가 떠오르고, 정파의 싸움에 지친 추기경들이 아무 말하지 못하자 베니테스가 일어난다.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하셨나요?
무엇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내면입니다.
증오에 굴복하고 편을 나눌 것이 아니라
모든 남성과 여성을 대변해야 합니다.
교회는 전통이 아니고 과거도 아닙니다.
교회는 다가올 미래입니다.



 우리는 무엇과 싸우는 것일까. 인류 중에서도 몇십 년을 자신의 내면만을 갈고닦은 자들조차 당파 싸움과 권력과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가. 이에 대한 물음에 대해 베니테스는 외부의 갈등을 내면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과 사람과 내 이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갈등을 유발하는 내 내면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베니테스의 말에 로렌스의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다음 투표 결과, 베니테스가 교황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그 역시 비밀을 품고 있었다. 온전한 남성이 아닌, 유니 섹스였던 것이다. 외적으로는 남성이지만 그의 안에는 자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렌스는 교황 임명식 전에 재빠르게 그의 앞에 선다. "무슨 일인지 사실대로 말해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베니테스는 여전히 침착하고 온화하다. "맹장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저도 제 신체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었죠. 수술을 해서 자궁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직전에 그만두었어요. 이 역시 하느님이 주셨다는 걸 깨달았죠. 이것 또한 제 모습이라고요. 제 모습 그대로 살아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그의 말에 로렌스는 말없이 베니테스가 입은 옷매무새를 다듬어준다.


   상식 밖의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고 있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서, 되려 상식적인 일들이 희소하고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경악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드물 정도다. 네모난 미디어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들을 지켜보며 죄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은 무겁게 받아 들이고,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긴다. 이는 영화 <콘클라베>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인간이 크던 작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진정 그 '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가 중점으로 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 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을 하는 것과 그것을 부정하며 자신의 내면을 외면하고 도망가는 것의 차이가 진정한 죄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죄를 저지른 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모르는 자. 그가 바로 진정한 죄인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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