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소극장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
네 자매는 장례식장에 들어선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방문했던 우메네코 식당의 히데코 아주머니의 부고는 가슴 아프다. 히데코 아주머니와의 추억에 잠기고 있는 네 자매에게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고, 너희들과 불꽃놀이도 보고 벚꽃이 흩날리는 걸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러자 막내인 스즈는 "아빠도 그랬어요. 병실에서 하늘을 보고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요."라고 말한다. 어두운 무대 위,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다섯 사람을 보면서 행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게 아닐까 하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원작 만화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재현한 영화까지 모두 섭렵했기에 우리나라에서 시연하는 공연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재현된 연극은 만화와 영화를 적절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미처 나오지 못했던 인물들이 공연에 나오기도 하고, 만화에서 울려 퍼졌던 대사들이 연극에서 그대로 차용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세 매체 모두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다는 점이다. 만화는 스즈의 성장, 영화는 자매들의 연대가 내 눈길을 끌었다면, 연극은 상실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극 도입과 마지막에 반복되어 등장하는 장례식장, 그리고 연극이 시간순으로 진행됨에 따라 자매들에게 일어나는 죽음과 사랑의 반복이 울림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항상 죽은 사람들이 남겨둔 것을 처리하고 품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떠난 사람들이 남겨준 숙제들이 너무 많아요." 둘째 요시노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죽었음에도, 자매들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음을 토로한다. 요시노의 말처럼 자매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오래전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여동생을 만나게 된 세 자매는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 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자매들의 행복과 불안이 교차되며 이어진다.
자신이 혐오하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병원 의사와 불륜관계를 이어나가는 첫째 사치, 매번 만족스러운 연애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둘째 요시노, 스포츠 점원직으로 벌이를 이어나가는 치카, 배다른 언니들과 살게 되어 혼란스러운 스즈, 죽은 할머니가 물려준 자매들이 사는 집을 파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는 철없는 어머니의 등장까지.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 속에 삽입되는 소소한 일상들은 그녀들의 삶이 분명 행복하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알려준 방법으로 매실주를 담그고, 바닷가에서 한없이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여러 사랑을 겪으며 자매들은 성장한다.
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비난받고, 손가락질 받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네 자매에게 일어나는 걸까. 네 자매가 가졌을 물음은 둘째인 요시노의 입으로 새어나온다. "왜 하필이면 히데코 아주머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히데코 아주머니가 은행원인 요시코와 동료에게 부탁한 유산 문제 모두 해결되어 가는데 하필, 지금, 히데코 아주머니가 불치병에 걸리는 일이 일어나는 거냐며 요시코는 동료 선배에게 묻는다. 그러자 선배는 마시고 있던 맥주 캔을 바닷가 모래 사변에 내려 놓으며 말을 잇는다. "왜, 하필, 나일까. 나도 수없이 내게 질문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더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거야. 특별한 게 아닌 거지. 그러니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움직이는 거고. 히데코 아주머니를 위해서 공증 있는 유서를 쓰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요시노의 선배 동료가 대답한 '나'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은 연극 속 네 자매의 일상을 관통하는 말이 된다. 복잡한 가족 관계가 일어난 일은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보다 매실주를 한 잔 마시며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자매들이 손에 쥔 행복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고 꺼내 마실 수 있는 매실주가 그녀들의 집 안에 가득 쌓여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