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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교리의 이름으로

김동철 <퇴마록>

by 김채미 Mar 12. 2025

"천상의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나를 등불 삼아 영원히 타오르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모습을 드러내라." 한 신부가 십자가를 두르고 하느님을 외치며 주먹을 휘두른다. 커다란 몸짓으로 신부를 비웃던 악마 아스타로트는 주먹에 튕겨져 나가고 몸이 서서히 부서지며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마동석에 버금가는 커다란 몸에 주먹으로 악마를 때려잡는 신부님, 마치 천사 같은 날개와 하얀 몸으로 저주를 내뱉고 인간을 비웃는 악마. 영화 도입부부터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캐릭터와 액션씬에 입을 벌렸다. 이건 된다. 될 것이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 새로운 길을 열 것이다. 이윽고 퇴마록이라는 타이틀과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옆에 앉은 친구와 무언의 시선을 주고받았다. 친구의 눈은 이건 대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70년대 90년대 생 중, '퇴마록'이라는 책 제목을 들어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90년대 생인 나조차도 퇴마록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이자 오컬트물의 원조이자 전설인 소설로 이름만은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한 콘텐츠였기에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월 중순, 드디어 시사회가 열리고 무수한 찬사가 쏟아지면서 호기심은 더욱 강렬해졌다. 과연 애니메이션으로 바뀐 소설은 어떤 방향성을 보여줄까. 오랜만에 개봉한 우리나라 액션 애니메이션인데 액션과 연출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말이다.


퇴마록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감히 롤 애니메이션 <아케인>에 견줄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액션, 소설 속 인물들을 강렬한 캐릭터로 이미지화시켰고, 소설 속 배경과 설정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트웍이 환상적이었다. 세심한 공간 묘사와 인물 묘사, 인물들의 대비까지. 성우들의 열연도 한 몫했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퀄리티가 좋았던 애니메이션이 얼마 만에 등장하는 것인가. 3D 애니메이션이 지녀야 할 퀄리티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소설이 지녔을 재미를 재현시켰다는 것에서 놀라움이 컸다.


흔히 원작이 있고 그것을 재현하는 콘텐츠는 두려움을 안기 마련이다. 원작만이 지니는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반지의 제왕'인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엄청난 기술력과 화려한 연출로 원작을 뛰어넘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다. 대부분은 원작의 재해석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퇴마록은 이를 뛰어넘었다.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조차 설정을 이해시키고 캐릭터를 설득시키는데 어떻게 실패할 수 있을까. 당연히 원작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찬사가 뒤따랐다. 그 이유는 '재현'에 있다. 원작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감독과 제작진의 자신감,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기술과 연출을 차치하고 '신과 교리의 이름으로' 지상에 부활한 '악'을 처단하는 영웅적 서사에도 커다란 매력이 작용한다. 신부와 스님, 전혀 합쳐질 것 같지 않은 천주교와 불교의 만남, 여기에 무협 소설에 나올 무림 고수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들까지, 온갖 신화들이 점철되어 나오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먹으로 악마를 때리는 신부의 모습은 얼마나 신선한가. 더구나 신의 이름을 부르짖지만, 그 아래의 인간들이 어쩔 수 없는 일들, 주인공들의 발목을 붙잡는 커다란 상실감들이 잔인한 현세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곧 관객들의 과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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