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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Oct 09. 2019

가끔... 글을 쓰는 이유

아주 가끔...일주일에 이 천자씩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책을 낸다거나 나를 과시하려는 욕망이 있어서가 절대 아니다. 단지 속이 답답할 때 뭔가를 게워내고서 느껴지는 확 뚫린듯한 상쾌한 기분을 얻기 위함이고, 어딘가 가려울 때 그것을 박박 긁어낸 후 찾아오는 평온한 상태를 이루기 위함이다.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어내고 그것들을 가만히 곱씹으며 바라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굳이 말하자면 치유를 위한 글쓰기라 부르고 싶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득히 오래전 국민학교 시절부터 백일장은 언제나 내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손 쥐어진 연필 한 자루와 붉은색 줄눈이 들어간 원고지를 보면 머리가 하얘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정작 유명한 문인들의 원고지를 보면 칸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휘갈겨 쓰여있던데, 나에게 글짓기는 띄어쓰기에 주의해서 한 글자씩 칸을 메우는 일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국민학교 사 학년 때 미래에 대한 상상을 주제로 한 백일장이 있었는데, 남북이 통일되어 신의주역에 소풍을 가는 글을 썼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낸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 이후 1986년에 대학입시 역사 상 최초로 생긴 논술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학교 교실에서 몇 가지 주제를 연습 삼아 썼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정하고 논하여라'라는 주제가 대학입시 논술에서 던져졌고 연습했던 주제인지라 열심히 빼빽하게 원고지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오랫동안 글을 쓸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글을 쓴 유일한 기회는 일 년에 두 번 전 직원들에게 보내는 사장님의 신년사를 회계연도 초인 유월에 맞추어 쓰고, 달력 기준 새해를 위해 12월 말에 쓰는 일이었다. 온갖 포털사이트를 뒤져서 신년을 상징하는 동물과 아름다운 샘플 문장을 검색한 후 '원숭이처럼 재능을 발휘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거나 '긴 여정을 떠나는데 멋진 여행이 되라'는 식의 의례적인 글을 짜집기 하는 수준이었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을 담아 쓴 것은 사실 태어나서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무의미한 글쓰기 경험으로 반평생을 살았던 거다. 


2019년은 나에게 전환점이 찾아 온 해이다. 올해 봄부터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하나둘씩 실직을 하는 친구가 생겨났고 우리는 그를 위로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그러던 중 5월 초여름에 바로 그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고 말았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실직의 황망한 공허를 채우기 위해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순정소설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동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권여선, 김영하, 박민규, 김애란, 성석제 등의 작가들과 호흡을 하며 외로운 여름을 이겨냈다.  


급기야는 전직장 동료의 꼬임에 넘어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글쓰기 기초반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가슴속의 울분은 운동을 통해 흘리는 땀방울로 배출되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운동 후에도 아직 가슴속에 몽우리가 남아 있었고 이것들은 글을 통해서 정리가 되고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침잠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후반부에 가로등이 되어 줄 참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매주 하나씩 주어지는 주제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돌에 새겨나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함께 하는 문우들은 미숙한 글을 탓하지 않고 따듯하게 격려해 주었고 같은 지구별 여행자로서의 동료애를 보여주었다. 나 또한 그들의 글을 읽고 그들의 인생에 대해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해주면서 받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 주는 치유의 힘을 경험하게 되었다.  


가슴에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목 놓아 울게 하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어제가 오늘 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 한구석에 가라앉아 응고되어가는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들을 털어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스피린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저...방금 약 한 알 먹은 것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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