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go Aug 24. 2019

나의 행복한 순간-초여름밤 줄넘기 소리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


나의 과거를 더듬어보게 된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중에 언제가 가장 손꼽을 만할 행복한 순간이었을까? 그러한 것들에 특정한 조건이 있는가? 그렇다면 어느 것을 골라야 하나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는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내 몸의 가장 사용하지 않는 석회질이 잔뜩 끼어 있는 근육을 사용해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이 나에게는 글쓰기인 듯싶다.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듯한 이 기분, 불편하지만 곧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젓가락을 사용하여 상황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콕콕 집어올릴 그날이 언제 가는 나에게도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써본다.


행복했던 순간, 나에게 그런 순간이 언제였을까? 가만있어 보자...

기억을 더듬어 추억여행을 시작하려는데, 창문 밖 1층 놀이터에서 어느 초등학생의 줄넘기 소리가 들려온다. 일정한 간격으로 타닥거리며 리듬을 타고 흐르다가 얼마 가지 않아 끊기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문득 딸아이에게 줄넘기를 가르쳐 주러 온 가족이 출동했던 초여름 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하루 전에 내린 비가 흙내음과 함께 베어나와 코 끝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줄넘기를 연속해서 두 개 이상 하지 못해서 답답해하고 있는 초록색 반바지와 끈 나시를입고 있는 8살짜리 아이의 삐죽거리는 입, 그것과 상관없이 뛸 때마다 하늘과 땅을 찰랑거리며 오르내리는 두 갈래 끝의 나비 모양 머리끈, 줄이 길어서 손잡이 부분을 두어 번 감아 잡은 아이의 조그만 손, 아이보다 더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며 뭐라고 가르쳐야 아이가 알아들을까 안달복달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무려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이지만 어제 찍은 필름 같은느낌이다.


조용필의 노래 가사처럼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이었다.


그런 일상적인 여름밤이 왜 생각나는 걸까?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나 회사에서 승진하거나 인센티브를 두둑이 받았을 때의 불꽃축제 같은 화려한 행복감도 있었지만, 물 흐르는 듯 잔잔한 행복했던 순간이 더욱 나를 지탱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행복의 기억상자에는 몇 안 되는 큰 돌과 작지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돌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황홀했던 불꽃놀이의 다음날 아침과 같이 어떤 큰돌은 커 보였지만 금방 쉽게 잊히는 것들도 있다. 또 어떤 돌들은 서서히 풍화되는 바닷가 바위같이 오랜 시간을 거쳐 작은 조약돌로 바뀌는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이 가져다주는 망각과 무덤덤해짐 끝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반면에 작지만 황금과 같이 반짝이는 소소한 일상의 기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 아이는 줄넘기를 3개를 돌파하는 날 더 없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건강에는 좋지만 지루하고 따분해서 좀처럼 재미를 붙이기 힘든 운동 중 으뜸이 턱걸이, 팔굽혀펴기 그리고 줄넘기 정도일 것 같다. 줄넘기를 하루에 300번만 하면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어도 막상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이다. 그렇게 재미없는 줄넘기가 아이에게는 기를 싸고 달성해내고 싶은 신비로운 경지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하지만 대게는 한 살만 더 나이가 들면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줄넘기를 몇백 개씩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이때쯤이면 아이는 이미 줄넘기에 흥미를 잃게 된다. 가슴 설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덤덤해지는 현상이다. 하기야 하늘을 걷는 듯한 흥분감으로 배우자와 아이를 평생 만나면 심장에 무리가 가서 수명이 단축되겠지. 잔잔한 물과 같은 행복감으로 사랑하는 이를 대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불꽃놀이는 끝났으니 나만의 숲속 작은 시냇물에서 가끔씩 반짝이는 금빛 모래가 되고 싶다.


와인에 처음 빠져들었을 때 마음에 맞는 부부와 거의 매주 함께 모여 와인 공부를 했던, 아니 거의 공부는 안 하고 전투적으로 와인을 마셔 대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해에 송년 모임을 하면서 지난 일 년간 마신 것들 중 가장 맛있는 와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의외로 나를 포함한 4명 모두 몇 달 전에 함께 마신 중저가의 남미 와인을 최고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보다 몇 배는 비싼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을 뒤로하고 그 와인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와인이 잘 보관된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가을밤에 꽃과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함께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이 주는 행복감을 끌어올리는 기본적인 조건은 와인 자체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마시는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이 매우 중요하다.


가족들이 비싼 여행을 갔었던 소중한 추억도,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면서 땀을 흠뻑 흘린 더운 여름날의 기억도, 면세점에서 좋은 가격에 사온 이름난 와인도, 서로에게 축복을 주면서 마셨던 중저가 와인도 모두 커다란 행복 기억상자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 행복의 기준은 금전적인 가치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