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go Aug 24. 2019

나는 누구인가?

나는 스쳐가는 바람이다.


나는 누구인가? 매우 철학적인 주제이고 생각을 미궁에 빠지게 하는 면이 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뭐 이런 주제들을 받으면 종교인이 아닌 이상 뚜렷한 답이 없어서 당황스러워하기 마련이다. 추상적인 질문은 역시 추상적인 답으로 받아쳐야 한다. 어느 누구도 한번 발을 담근 시냇가에 발을 다시 담굴 수 없듯이 내가 나를 정의하는 순간에도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기에, 사실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하기 어려우며 나는 현재진행형이고 미래형이다. 다만 내가 평소 품어왔던 어렴풋한 바램들을 적어본다. 



나는 스쳐가는 바람이다. 


내 삶은 영원하지 않고 잠시 지구별을 스쳐가는 바람과 같다. 영원한 삶을 사는 신이 아닌 우리 인간은 모두 그렇지만 이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설혹 자각하더라도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많은 이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 나는 산골에서 태어나 도시 변두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도심에서 직장생활을 보냈다. 아직 도시에 살고 있지만 도심에 갈 일은 친구들과 술 한잔하러 갈일 말고는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스치고 지나가고픈 곳은 교실, 숲길, 책, 명상 그리고 요가이다. 무엇인가를 배울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으며, 고요한 숲길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호젓함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소설가와 수필가들의 황금같이 빛나는 글들이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텅빈 요란함보다는 충만한 소박함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키 작은 바람꽃의 꽃술만큼 짧은 인생의 주인공인 나는 항상 겸손하게 다른 꽃들의 봄날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할 것이다. 찰나 같은 인생 서로 사랑하는 일 말고는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밝은 곳을 향해 간다. 


나는 또한 한 줄기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어디든 여행하는 한 마리 새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태양의 밝은 빛이 저 멀리 해안선을 넘어 동쪽 하늘에서 기지개를 켤 때면 나는 그곳을 향해 날갯짓을 한다. 어젯밤 시름을 깊게 했던 비바람과 천둥소리는 벌써 잊은 지 오래다. 잿빛 어둠이 사라지기 전에 푸른 하늘은 이미 내 눈에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창공 높이 올라 멀리 보고 밝은 곳을 향해 힘차게 날아갈 것이다. 갈매기 조너던같이 새벽에 땅을 박차고 올라 나만의 한계에 도전하며 고도의 비행기술과 따듯한 가슴으로 세상에 작은 돌 하나 남겨놓을 것이다.



나는 좋은 향기를 품고 있다. 


하늘이 내려주신 제철 꽃향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품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온 우주를 품고 세상에 꽃망울을 터뜨린 작은 야생화같이 조용하지만 강하게 일어서서 향기를 뿜어 낼 것이다. 좋은 향기를 가진 이들과 즐거움을 나눌 것이고 함께 여행할 것이다. 창가를 두드리는 거센 우박 같은 세상의 번잡스러움은 잊고 한 잔의 찻잔에 내 영혼이 함께 할 것이다. 차 한잔을 마시며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찻잎을 정성으로 가꾸고 내어준 이들의 수고와 땀방울을 기억할 것이다. 나와 함께 한 이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날 수 있게 내 안에 쉬이 가물지 않고 풍요로운 꽃밭을 가꿀 것이다. 



나는 느끼고 감동한다.


아폴로 우주선이 50년 전 달의 궤도에서 찍은 지구, 푸른 구슬(Blue Marble)은 한편의 예술작품이고 나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내 삶이 아름다운 푸른 구슬, 지구를 그대로 닮아가기를 희망한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함께 봄을 맞이할 것이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여름밤을 보낼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이 흐르는 선선한 가을밤에는 권여선 작가의 '비자나무숲’을 읽으며, 눈덮힌 하얀 겨울에는 친한 벗들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지나간 한 해를 이야기하고 존 콜트레인의 재즈가 흐르게 할 것이다. 비록 부자가 아니어도 좋은 음악, 미술작품, 문학작품과 함께 하며 풍요롭고 축복받은 기분을 만끽하며 살게 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취미가 업이 되고 다시 업이 취미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내 삶을 보람차고 흥미롭게 만드는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배워나갈 것이다. 나는 무엇 하나만 잘 하는 외골수적인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삶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분야에 두루두루 박식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의사로 비유하자면 심장전문의보다는 가정의학과 의사정도 될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융합하는 통섭의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될 것이고 지금 그 길로 가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삶의 내밀한 기록들을 한편의 글로 남기고 내가 떠난 자리에 작지만 의미있는 울림이 되게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자유론] 관습을 뛰어넘는 다양성이 미래를 여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