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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Dec 21. 2019

택시, 왜 그러세요?

지어낸 이야기 아니고 실화입니다.



택시의 뒷자리에 몸을 굽히고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싸구려 포마드 냄새가 머리를 아찔하게 했다. 회사 택시인데 운전기사님은 어디를 다녀온 걸까? 아니면 나른할 수 있는 오후에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스킨로션 범벅을 한 걸까? 택시에서 맡게 되는 담배냄새도 싫지만 이것도 참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이건 전조에 불과했으니...


"기사님, 도곡동 944번지 찍고 가주세요"라고 하니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투로) "내비게이션 없어요. 어디로 갈 건지 말로 알려주세요."


(젠장, 내가 아는 길이면 주소를 찍어서 가자고 하겠나, 이 냥반아)

"네, 그러면 제가 알려드릴 테니 일단 직진하고 계세요. 두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셔야 해요"


그런데 기사는 척도 안 하고 좌측 차선으로 이동 중이었다.

"기사님, 조금 더 하다가 우회전할 거예요"

"네, 도곡동이니까 좌회전하는 건데요?"


"아니 제 내비게이션에 직하다가 우회전하라고 나오잖아요. 우회전이라는데 왜 좌회전을 하려고 하나요?"

"아니... 도곡동이라고 하니 그러잖아요"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데 귀까지 어두운 이 분은 왜 이렇게 노년에 사람들을 괴롭혀가면서 회사차를 몰아야 하는가)


좌회전이 아니라 우회전이라고 두 번을 고함치듯 이야기하고 나서야 우회전을 했는데.


"이 골목길로 500미터쯤 쭈욱 가서 세워주세요"

(100미터쯤 가서)"여기서 좌회전 하나요?"


"좌회전하라고 한 적 없어요. 400미터 남았으니 더 직진하세요."

(200미터쯤 가서) "여기서 좌회전하나요?"


이쯤 되면 이 운전기사는 오늘은 좌회전만 하려고 일터로 온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거짓말 같지만 이분의 행동은 사실이다.


"아니 좌회전 아니라니까요. 제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그냥 쭉 직진만 하세요"

"네, 그런데 여기 도곡동 맞아요?"

"도곡동 944번지 가는 길 맞으니까 제발 그냥 좀 갑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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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찾은 커피숍은 '에이림 커피'라는 드립 커피 전문점입니다. 5천 원 정도의 가격에 엄청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주소는 도곡동 944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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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탈 때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생길지 두렵습니다. 담배냄새, 듣기 싫은 교통방송, 말 시키기, 정치 이야기, 목적지 못 알아듣기, 기사식당 냄새, 구취, 트림, 학생에게 반말하고 아무데나 내려주기 등등


서비스에 표준화가 없고 일정한 품질의 재현성이 떨어진다면 왜 '타다'의 운행을 막고 이런 택시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여야 하는지. 법은 잘 모르겠고. 대안이 없어 그냥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낡은 서비스를 언제까지 이렇게 안고 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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