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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Mar 30. 2020

봄, 봄

나중에 웃으며 기억할 수 있기를...

3월 말 오후 양재천에 햇살이 COVID-19 창궐로 생기를 잃어가는 세상은 아랑곳없이 산책길을 블링블링하게 만들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치료 중인 환자의 숫자보다 완치 환자가 더 많아지는 골든 크로스 현상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4천 명 넘는 환자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무스크로 중무장 한 채로 무심한 벚꽃길을 산책하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식료품을 사러 가는 것 이외에는 시민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데에 반해 한국은 실내 활동을 제한하는 가이드만 있는 상황이다. 후일 코로나 펜데믹이 종료되고 나면 나라마다 다양하게 택한 예방조치가 평가를 받게 될 터인데 자못 궁금해진다. 


양재천에서 한강 방향으로 걷다 보면 나타나는 탄천 초입에는 노랑 병아리가 군무를 추는듯한 활짝 핀 개나리가 나타나고 그 아래로는 동네 아주머니 몇몇이 쑥을 캐고 있었다. 서울 한가운데에서 봄나물을 캐는 그분들이 손길을 보면서 봄 같지 않은 봄, 봄을 느끼기에는 좀 미안한 봄, 전례 없는 대공황을 앞둔 봄을 무색하게 만드는 작은 일상의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먼 미래에 2020년 봄을 회상하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겠지. 


'한국은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에 질서가 유지되는 가운데 가장 빨리 정상화된...'

'세계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진단키트와 백신의 수출로 활기를 띄기 시작...'

'방역당국의 리더들이 양궁국가 대표 감독들의 해외진출같이 전 세계로 근무지를 옮겨다니기 시작...'

'세계에서 가장 잘 정리된 한국의 질병관련 빅데이터 분석 리포트가 의학계에 교과서에 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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