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세티아와 몬스테라
겨울이면 우리 곁을 빨갛게 수놓는 포인세티아가
일년생이 아닌, 다년생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추운 날이 지나면 잎을 전부 떨어뜨리는데, 보통 죽은 줄 알고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더라고요.
매년 겨울이면 전국을 빨갛게 수놓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포인세티인데요. 날이 조금 추워진다 싶으면 백화점이나 카페, 빵집과 식료품점, 미용실이나 편의점 등 그야말로 어디서나 마주치게 되곤 하죠. 마치 꽃처럼 보이는 새빨간 잎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들뜬 분위기에 딱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나 자주 보이는지 평소엔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연말에만 잠깐 꺼내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조화(造花)는 아닐까 하고 만져보면, 어김없이 생화(生花)인데요.
포인세티아는 화훼단지에 가면 1~2천 원에 팔릴 정도로 값이 저렴한 식물 중 하나입니다. 생화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든 정교한 조화가 오히려 곱절은 비싸죠. 한두 달 잠깐 분위기 내는 용이기 때문에 굳이 더 비싼 조화를 구매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0년이 넘도록, 매년 연말 거리를 수놓는 포인세티아를 보면서도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가끔 기분 좋은 날에 마주쳤을 때도 그저 예쁘네, 정도의 감상으로 가볍게 지나가고 말았죠. 아마 일평생 식물에 큰 관심 없이 살아온 배경도 이유일 테지만, 아마 전 국민의 대부분이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매해 포인세티아가 우리 곁을 수놓은 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죠.
오랫동안 부모님 품에서 지내다, 몇 년 전 직장의 지역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첫 독립의 기쁨과 설렘도 잠시, 곧 혼자 지내는 타향살이에 조금씩 외로워지기 시작했죠. 어딘가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지만 출퇴근하는 1인가구여서 언감생심 반려동물을 들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사람 한 명의 외로움을 달래자고, 작은 생명체의 외로움까지 더할 순 없었으니까요.
마침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식물을 기르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지도, 의사표현도 하지 못하는 식물이 무슨 위안이 될까 싶었지만 무엇이라도 정붙일 곳이 필요했기에 작은 식물 하나(파키라였습니다)에게 제 공간 한편을 내어주게 되었죠. 그렇게 식물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준 후, 반년쯤 지나자 다시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포인세티아의 계절이.
어느 날 출근해 보니 사무실이 온통 붉은빛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하루 새 생긴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들, 그리고 포인세티아가 그 주인공이었죠. 한창 식물에 관심이 생기던 차였기에 포인세티아에도 처음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매해 겨울을 장식하고 사라지는 식물이었기에 당연히 일년생 식물인 줄 알았는데, 포인세티아는 다년생 식물이더라고요. 겨울이 지나가면 잎이 지고 스러지는 게 아니고, 다시 다음 겨울을 준비하는 식물이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매해 전국을 수놓는 그 많은 포인세티아들은 봄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사내 조경을 담당하시는 분께 물어보았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저 많은 포인세티아는 어디로 가는지. 그러자 당연하다는 투로, '겨울이 지나면 전부 폐기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거 얼마 하지도 않는다’는 말은 덤이었죠. 다년생인 걸 알고 계시는지 재차 여쭈었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투였습니다. 할 수 없이 올해는 버리기 전에 한두 개만 내어줄 수 있는지 물었고, 겨울의 끝자락쯤 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는 포인세티아 하나를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날이 따뜻해지자, 포인세티아는 잎이 더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년생 식물이라 모든 잎이 떨어지는 건 아니고 붉은 잎만 떨어진 후 초록 잎이 남는다는데, 제가 데려온 아이는 점차 모든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죠. 통풍이나 일조량, 물 주기 등도 바꿔보고 영양제까지 주어 보았지만 종국에는 초록빛이던 가지조차 갈색으로 메말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잎이 모두 진 후에도 꽤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았지만, 가지조차 메마르자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많은 포인세티아 중 단 하나를 살리는 것조차 실패했노라고.
고백하건대 메마른 포인세티아 화분을 버리지 않은 건 단순히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구석 한편에 미뤄두고 한 달, 두 달 그의 모습을 점차 잊어갔죠.
그런데 날이 더 따뜻해진 어느 날, 곁에 있는 다른 화분들에 물을 주다 보니 포인세티아가 선명한 초록빛 새잎을 틔워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을 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즈음의 일이었죠. 그 선명한 초록 잎을 보고 있자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내면을 꽉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저 작은 앙상한 가지에서, 그토록 선연한 붉은빛으로 빛나던 잎들을 모두 떨어뜨린 후에야 하나의 잎을 다시 피워내다니.
전쟁터에서도 꽃을 핀다, 어디에나 희망은 있다, 이런 유의 말들을 우린 지겹게 들었습니다. 연대가 느슨해지고, 서로를 경계하고, 고립되고 외로운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지금 시대엔 더욱더. 저 역시 절망하고 희망을 찾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누군가는 ‘저거 얼마 하지도 않는데…’ 하는 작은 식물에게서 그 어느 것보다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아이는 돌아온 겨울에 붉은 희망을 다시 피워냈고, 다시 잎을 또 떨어뜨렸으며,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초록잎을 틔워내고 있답니다.
그 옆에는, 반년째 새잎 하나 보여주지 않던 몬스테라가 거짓말처럼 새잎을 활짝 뽐내주고 있고요.
날씨 앱을 보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봄을 가늠하던 제가,
어느새 식물의 새잎을 보면서 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또, 봄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