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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Oct 23. 2020

장례


장례


처음이라 그랬어

 

남의 죽음을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남을 따라 했어

 

내가 가진 옷 중에는 검은색이 없어서 난감했어

 

검은색 옷을 입은 얼굴에

미지근한 얼굴로 도장을 찍었어

인주를 묻혀 보이지도 않았어


그게 문제였는지


도장에 내가 찍혔어

 

이번엔 검은색 옷을 빌려 입었어

어쩔 줄 몰라서

또 남을 따라 했어

 

지도사가 신 같았어

“절은 이렇게 하는 거예요.”

“향이 꺼지면 안돼요.”

 

따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

쉬워질 때까지 쉬운 척했어


도장이 쌓여서

맨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어

차갑고 뜨거운 인주가 섞여 미지근했어

 

우는 일과 웃는 일의 주름이 크게 다르지 않았


내가 없으니 남이 있었어

 

잘하고 있는 건가?

옷이 좀 크다

수염은 좀 깎을걸

밖에 나가서 인사는 해야지

 

사진의 픽셀이 흐려질 때 즈음

향냄새가 없는 곳으로 불려 갔어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고요했어

차가운 이마에 손을 짚으면

콧잔등이 뜨거워졌어

눈에 물이 잔뜩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

검은색과 흰색과 금색이 멀고도 가까웠어

 

끈끈했던 상복들은 나를 흘겨봤어

눈길에 붙어 오도 가도 못했어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어

 

“죄송합니다. 처음이라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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