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관찰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진 Dec 13. 2019

전선



전선


길을 걷다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이 얽히고설킨 검은 줄에 잘게 쪼개져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었다. 어느 곳에선 여러 검은 줄들이 하나의 육중한 몸집이 되어 하늘을 갈라놓았다. 명료한 분할이었다. 하늘의 흐름을 검은 줄로 엮인 그물로 막고 그 사이로 전기가 흘러간다.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이 밝은 빛으로 가득한 데 왜 이 줄은 명백한 검은색이어야 했을까? 어둠을 밝게 비추는 전기와도 검은색은 무관해 보인다. 전문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피복이 있는 전선은 모두 검은색이라고 한다. 이는 질문을 안 한 것과 진배없었다. 그의 말은 그 색이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없는 검은 줄들이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고 있다.


검은 줄들을 바라보면 철저하게 기능 위주의 배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미적인 효과를 고려했다기에는 그 모습이 조악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처음 선들을 연결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보이는 것보다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검은 줄은 보이지 않는 전기를 감싸고 돌기둥을 지지하며 네모난 거리들을 연결한다. 거리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동행한다. 무선 인터넷이 발달되어 직접적인 연결은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아직 전력은 그 단계까지 오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이 연결로 인해서 모두가 밝은 조명을 켜고, TV를 보며,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겠으나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이 연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 연결을 하였지만, 요즘은 그 연결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많은 날 중 하루는 쪼개지지 않는 하늘을 보고 싶다.

연결되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햇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