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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Dec 18. 2019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자.


그는 장작같이 마른 팔다리를 겨우 들어 나를 반겼다. 나는 죽음에 가까워져 변해버린 그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고, 병실 안에 하나의 침대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였을 때, 겨우 잡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의 눈에서 자식을 보았다는 안도감과 죽음을 맞이하는 슬픔을 보았다. 나의 이기심이 원망스러웠고, 그에게 미안했고, 미안했다.

그는 살가죽과 뼈가 맞붙을 정도로 마른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더는 흐르지 않는 눈물을 짜내며 내 귀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살자."


1년 동안 보지 못한 자식에게 하는 말이, 죽음을 앞둔 그에게서 나온 말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 말이 ‘열심히 살자’라니...

그는 내게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열심히’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은 ‘열심히 공부하자’였고, 내가 첫 회사에 입사할 때 그가 내게 했던 말도 ‘열심히 일하자’ 였는데, 그는 내가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열심히 살자’라고 한다. 아마도 그 말속에는 미래의 내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을 담고 있겠지. 나는 그에게 특별한 사건을 더 많이 만들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미래의 나의 특별한 사건 속에 더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은 한없이 무겁다고 생각했지만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식을 낳고, 지난한 삶을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수십 년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순간이 이토록 허망한 것인가. ‘열심히 살자’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인생의 덧없음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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