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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Jan 02. 2020

죽음이 지나간 후에



죽음이 지나간 후에


그는 단 2시간 만에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성인 남성의 육체가 소멸되고 뼈가 으스러져 남은   줌의 가루,  하얀 가루를 하얀 장갑을  화장터의 직원이 종이에 털어 넣었다.  모습은 봉투에 가루약을 넣는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한 일에 불과한 것이겠지. 윤기 있고 부드럽던 그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졌고, 이제는 메마른 가루가 되어 공중에서 흩날렸다. 죽음은  인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잔인하도록 직접적이었다.


나는 아직 뜨거운 불길이 남아있는 유골함을 들고 납골당으로 가는 버스를 향해 걸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걸었다. 나는 이 과정과 절차가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그의 죽음이 더 슬펐다. 아무리 삶의 많은 부분이 형식 안에 담긴다 해도 죽음도 그 형식을 따라야만 하니, 결국 인간은 그들이 만든 형식 속에 매몰되어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납골당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안치할 공간을 선택해야 했다. 납골당은 공간의 크기와 높이에 따라서 가격이 달랐다. 성인 여자 평균 눈높이 맞는(적당히 위와 아래에 있는) 위치가 가장 비싸고, 공간이 살짝 넓은 곳이 더 비쌌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이 같아 보였다. 같은 공간에 칸막이만 설치해서 보는 사람이 보기 좋은 위치가 가장 비싼 것이었다. 나는 그를 특실의 맨 밑 칸에 안치하였다. 그 당시에 아무 말도 없는 가족, 친척, 그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고 내게 안치된 자리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납골당에 찾아오지 않는 그들의 푸념을 한 귀로 흘렸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었나 보다. 나는 결국 납골당의 2층이 완공된다면 좋은 위치로 유골함을 옮기자고 하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전화가 왔다.

“2층이 곧 완공이 됩니다. 천만 원을 추가하시면 자리를 2층으로 옮겨드려요.”

그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고, 형식을 위해서 나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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