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내가 초대한 손님이다. 이렇게 초대한 손님 덕에 우리는 때론 끙끙 앓고 밤잠을 설친다. 심리학에서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92%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4%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불가항력 일이며,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겨우 4%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지나친 걱정을 불러들여 삶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말이다. 김정운 교수는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라는 산문 책에서 걱정거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걱정거리를 빨래집게처럼
마냥 널어놓고 산다.
빨래가 없는데도
도무지 걷어낼 생각이 없다.
걱정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인지함으로써 생기는 반응이다. ‘만약 ~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 패턴의 결과물이다. 걱정은 보통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건에 관한 개개인의 상상물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건을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의 함정에 빠진다. 어제 발생한 어떤 일에 생각을 하고, 끝말잇기 게임처럼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나의 행동에 세세한 잘못이나 흠결이 눈에 거슬릴 때, 스스로 걱정거리를 불러온다. 한번 걱정거리에 매몰되면 늪에 빠진 것처럼 좀처럼 헤쳐 나오지 못한다. 숱한 경우의 수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일로 착각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내가 처한 상황을 현실처럼 위장하지만,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
지금은 불안의 시대이다. 취직, 사업, 내 집 마련, 결혼, 노후 대비까지 어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기 쉽다. 부정적인 감정은 자기 비하로 이어져 온갖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70%는 걱정과 불안으로 신경성 소화 불량, 위궤양, 불면증 등 두려움에 관련된 병이라 한다. 걱정만 없으면 나을 병이라 한다. 두려움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병을 낳는다. 걱정은 우리의 신체적 건강을 해치고 정신적 안정을 무너뜨리며, 일상생활의 질을 떨어뜨린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에서 류시화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다. 작가가 남인도 첸나이에 갔을 때 일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향해가는데, 폭우가 쏟아져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천 하나로 가림막을 한 오토바이와 자동차 중간 형태인 오토릭샤를 탔다. 비가 사정없이 들이쳐 백 미터도 못 가서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오토릭샤 바퀴까지 물에 잠겼다. 앞의 보이는 물체가 사람인지 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쇠창살을 꽉 움켜쥔 내 모습을 보고 늙은 오토릭샤 운전사가 어깨너머로 말했다. “낫싱 스페셜!(nothing special)” ‘큰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 말에 부정적인 상상으로 가득한 내 마음이 한순간에 평온해졌다. 우기가 긴 남인도에서 종종 폭우가 쏟아진다.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날이 활짝 개어 있었다.
일상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엉뚱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한 일들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바꿀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온갖 상상과 억측을 동원해 자신을 괴롭힌다. 밤이나 낮이나 비이성적인 생각을 반복하고 곱씹는다. 그럴 때 ‘부정적인 생각 스톱’이라고 속으로 되뇌어 보자. 영화에서 어떤 이가 팔목에 고무밴드를 차고 잡생각이 들 때 밴드를 당겨 그 잡념을 날려버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좋은 방법이다.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다. 그냥 흘려보내려 할 것은 전부 흘러가게 놔둬야 한다. “어! 또 내가 무슨 잡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내 머릿속 생각에 한 번씩 노크하여 안부를 묻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