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이라도, 내가 멈추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늘 같은 에너지로 일할 수는 없다.
이 말을 내가 하루에 몇 번이나 되뇌는지 모른다.
진심으로 믿고 싶은데,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나는 또다시 ‘나도 AI였으면…’ 하는 망상에 빠진다.
어제의 나는 꽤 괜찮았다.
할 일 목록을 싹 정리했고,
아이디어도 한 세 개쯤 터졌으며,
저녁엔 “이건 브런치에 꼭 써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그날의 나는 스스로에게 거의 콘텐츠 천재였다.
문제는, 오늘이다.
오늘의 나는 이불속에서
어제의 나를 약간 미워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굴었니, 어제 나야.
덕분에 오늘 나는 비교 대상이 생겼다고.”
나는 호르몬과 날씨, 체력에 따라
버전이 수시로 바뀌는 사람이다.
체력이 좋으면 갑자기 세상의 흐름을 다 읽는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기력이 툭 떨어지면
“왜 사는 걸까”까지는 아니어도
“왜 쓰는 걸까”라는 생각은 쉽게 도달한다.
속도는 기차인데 목적지는 어두운 골목 느낌.
이럴 때 ‘정신력’이나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순간, 더 엉망진창이 된다.
어설픈 완벽주의가 늘 실행을 막는다.
‘잘할 자신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자’는
논리 같지 않은 논리.
근데, 슬프게도… 너무 설득력 있다.
특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더더욱.
그래서 나는 실행 대신 계획을 한다.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콘텐츠 캘린더는 꽉 차있고,
독서 리스트는 주제별로 분류돼 있고,
프로젝트 기획안에는 “진짜최종_ver4” 같은 파일명이 붙어 있다.
문제는 실행은 전부
‘내일의 나’ 담당이다.
그런데 그 내일의 나는 또 내일이 되면 나에게…
뭐, 눈치를 준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도 나는
꽤 잘 살아 있다.
글도 쓰고, 밥도 먹고,
비 오는 날엔 괜히 창밖도 본다.
정해둔 루틴은 매번 무너지지만,
그 와중에 생겨난 새로운 루틴이
가끔은 더 잘 맞는다.
요즘은 좀 내려놨다.
에너지가 넘치는 날엔 몰아서 하고,
힘든 날엔 몰아서 쉰다.
그냥 내 안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한 컵 따라 마신다.
커피처럼.
엉망진창이라도,
내가 멈추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조금 늦고, 자주 삐끗하고,
가끔은 이불 밖으로 안 나가도,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거면
오늘 하루는 충분히 괜찮다.
아니, 생각보다 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