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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Dec 19. 2017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를 기다리며

정거장에 서 있다.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며, 저마다 바삐 흘러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떤 이는 추레한 가방을 들고, 어떤 이는 몇 개의 보따리를 힘겹게 들고, 어떤 이는 구두가 발에 잘 맞지 않은지 약간 절름거리며 걷는 이 쓸쓸한 정거장, 우리들은 모두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림자 하나씩 등에 매달고, 이제 저 그림자는 정오의 하늘 밑에서 아주 짧아지기도 할 것이고 황혼에는 좀 길어지기도 할 것이다.

좀 더 짙은 검은색이 되기도 할 것이고,  아주 흐리게 되어 어느 곰팡이가 낀 벽에 올라앉기도 할 것이다.이 그림자 왕국의 쓸쓸한 정거장을 지나가는 사소한 삶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의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첫 기항지, 그 첫 정거장에서 자라날 수 있는 사라들인지 모른다. 그에게는 아마 가장 따스한 유년의 그림이 일생동안 그의 뒤를 따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결국 추억의 헝겊을 끌고 가는 것이라면 그는 그런 추억의 얇은 옷깃을 아마 늘 만지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추억의 옷깃이 그러니까 언제나 추상(抽象)으로만 있다. 또는 허구(虛構)로만 있다고 해야 할는지, 그래서 늘 뿌리 깊은 상실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거기는 맑은 동해 바닷가일 거라든가, 모래알이 노랗게 또는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을 거라든가, 

솔잎에 부는 바람이 그 맑은 파도를 쓰다듬은 다음에 불고 있을 거든가, 아마 그 은 모래, 금모래 사이에는 해당화가 피어있을 거라든가……

나는 ‘기호적(假戶籍)’의 삶인 것이다. 일본 식민지상황을 종료하면서 우리나라만의 특수 사정으로 잠시 있었던 가호적, 나의 가호적은 물론 고향에 있었다. 그러나 그 고향은 늘 나에게 이방(異邦)이었다. 왜냐하면 가족들과 해어 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고향은 파도 가 넘실거리고 해당화가 피고 초여름 따스한 햇살이 부서지는 양지 바른 중간 산촌이었다.

그래서 고향은 일찍이 나에게 <우리가 물이 되어>의 바다를 선사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며/ 가문이 좋은 집에 들어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 위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랴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우리가 물이 되어>전문

그러니까 나는 백일 만에 나의 젊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그 ‘바다’를 떠났었다‘ ’보이지 않은, 영원한 처녀‘인 그 바다를 

‘잠간 다녀오리라’는 어머니의 결심은 임진강을 넘자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낮선 곳 타양에서 곳에서 고향을 동경하면 세월을 한탄하면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그래서 일까, 나의 속에는 늘 파도가 치고 있고, 초여름 햇살이 있었다. 내가 이만큼 달려오는 동안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저물녘에 우리는 가장 다정해 진다.

저물녘에 나뭇잎들은 가장 따듯해지고

저물녘에 물 위의 집들은 가장 따뜻한 불을 켜기 시작한다.

저물녘을 걷고 있는 이들이여

저물녘에는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기다리리라.

저물녘에 그대는 그 편지를 물의 우체국에 부치리라.

저물녘에는 그림자를 접고 가장 따듯한 물의 이불을 펴리라.

모든 밤을 끌고

어머니 곁에서.

-<저물녘의 노래>

전 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내 가수(假睡의 집으로 걸어서 들 돌아온다. 동그랗게 달이 떠올라 있다. 그 달을 보면서 나는 내 비밀의 화살을 쏘는 시늉을 한다. 내 화살은 나를 떠나 탱탱한 은빛 달에 나를 꽂힌다. 달은 은빛의 비명을 지르면서 부서진다. 부서진 조각들이 사방에 퍼진다. 그 한 조각을 엎드려 줍는다. 나의 바다를 찾아서, 나의 바다에 서 있을 연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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