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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Mar 19. 2018

운(運)과 신(神)

운(運)과 신(神)

종교혁명은 세상의 모든 문화가 신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하기 위한 혁명이다. 그래도  우리사회의 각박한 경쟁을 푸는 것은 신(神)을 테마로한 영화 버전만 한게 거의 없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의 메시지는 단순 명쾌하다.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는 생활속담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바로 그 단골 멘트가 아니겠는가? 오래도록 살아남은 ”권선징악“의 교훈, 주인공인 착한남자 자홍은 7개 지옥을 통과하면서 생전 행적에 대한 재판을 받는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 가슴에 얼마나 깊고 지울 수 없는 멍을 남겼는지 하나하나 되짚는 여정이다. 

신과 함께 에서 감동받은 이라면 어쩌면 자신의 삶의 목표를 운 동 외국어와 같은 항목에 ‘착하게 살자’ 하나를 더 추가해 마음을 고쳐먹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저승세계의 심판을 통해 오늘의 삶을 성찰하게 하다면 일본변호사 니시나카 스토무의 저서 “운을 읽는 변호사”는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선한 마음과 행동은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다. 1만 명 가까운 의뢰인의 행불행을 분석해보니 운을 부르는 습관은 도덕적감성에 귀결되더라는 것, 사후의 심판은 멀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승의 행운이라면 귀가 솔깃해 질것이다. 

그는 단언한다. 내가 받은 은혜는 ‘도덕적 부채’라고, 이 엄연한 빛을 제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오만함이야말로 운을 갈라 먹는 곰팡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불운은 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고 한다. 

권선징악만큼 유구한 토정비결의 앞으로도 대목을  맺는 것을 보면 사람의 운수에 대한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운이 좋다는 말은 대게 투입된 노력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 슨다. 특히 요즘처럼 돈복, 재운(財運)을 격렬히 탐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니시나카 시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는 되레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유념할 대목이다. 

젊은 층의 열광하는 비티코인으로 돈 벌여는 사례가 그런 사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0명중 6.7명은 2030세대라는데 이들은 카페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온통 비트코인이 화제다. 어떤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에선 8만원을 280 억 원으로 불렸다는 23세의 청년이야기를 만 천하에 소개했다. 인터뷰하는 2시간동안 30억이 늘어 넣는 말도 했다. 

이 억세게 좋은 운이 어디에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는가,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에 사로잡혀 너나없이 뛰어드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전설적 골프선수 잭 니클라우스는 자기 실력으로 우승을 하는 경우도 잇지만 생대의 실수나 오판으로 마친 승리도 많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운의 공식은 개인뿐 아니라 넒은 범위로 적용 가능한 것임을 지나해 탄핵과 대선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배운바 있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의 기부금 수사에 대한 형평성 논란, 시민단체 경력을 공무원 호봉에 반영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을 내고 또 거둬들이는 씁쓸한 모양새가 그런 것 들이다. 대선 승리의 운을 이렇게 야금야금 까먹어서 이를 곳은 어디인가,

케이블 방송에 소개된 “증쇄를 찍자”에 보면 운 총량법칙이 나온다. 드라마에 등장한 대형출판사 사장은 우연히 얻은 1등 복권을 돈으로 바꾸지 않고 손녀딸의 종이접기용으로 내준다. “태어날 때 운은 달아도 좋은 일을 하면 운은 모을 수 있다” 방황하던 젊은 시절, 이 한 마디를 듣고 평생 화두로 삼은 그는 일상 속 산행으로 차곡차곡 운을 쌓는다.

그리고 정해진 운이 할당량이 있다면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결심으로 돈 욕심을 내려놓았다. 도의 독에서 풀려난 것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맞물려 돌아간다고 했던가, 한번 운이 좋으면 다른 길에서 막다른 골목과 마주 칠 수 있는 법, 예전 TV에서 평범한 중년여성이 운을 정의하는 방식을 듣고 무릎을 쳤다. “운(運)과 공(功)은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지리도 운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공을 더 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 노력 했고,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성취 했다. 나보다 훌륭한 재능에도  나보다 운이 박한 사람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게으르게 불평하는 내가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비교 대상은 나 자신 뿐, 곁눈질 할 필요는 없다. 

한창 운이 좋다 해도 오만은 금물, 돈이든, 재능이든 권력이든 하늘의 호의가 계속된다 해서 내 권리로 착각해선 안 된다. “오만은 신의 내린 천형(天刑)”이란 말이 왜 생겼을까, 내가 들인 공보다. 과하게 누리는 운은 언젠가 세상에 되돌려줘야 할 빛이다. 한 없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니고 죄가 되어서 벌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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