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는 납 냄새가 났다. 공장에서 납땜질을 하다 집에 돌아올 때면 엄마는 납과 함께 녹아있었다. 엄마가 잠자고 있을 땐 납 냄새가 더욱 심했다. 엄마의 숨을 따라 깊은 곳에서부터 매캐한 냄새가 우러 나오는 듯 했다. 때때론 엄마가 더 깊게 숨을 쉬어 몸 안에 있는 모든 납을 빼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납 냄새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엄마 건강에도 나쁠 것 같다고 하며 남땜질을 그만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지만 엄마의 대답은 '그럼 뭐 먹고 살아'였다. 엄마는 주말, 밤낮없이 일한 댓가로 한달에 15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저축은 커녕 홀로 어린 딸 셋을 먹이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초등학교 때 god 의 <어머님께> 를 들으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던 것이 기억난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 끓여 먹었던 라면'이라는 가사는 우리집 그 자체였다.
짜장면을 먹고 싶진 않아도, 치킨 CF가 나오면 침 흘리며 쳐다보곤 했다. 엄마의 월급으로는 프라이드 치킨은 사치였기에 먹고 싶어도 말할 순 없었다. 하루는 토요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 엄마가 시장에 들러 닭을 사왔다. 엄마표 치킨을 해준다고 했다. 부엌에서 닭을 튀길 준비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힘든 삶에서 지치지 말자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닭을 튀기자 온 집안에 기름 냄새가 퍼졌다. 기름 냄새가 자욱히 내 얼굴을 뒤덮을 때 엄마는 엄마표 치킨을 들고 나타났다. 엄마표 치킨은 뭉친 솜패딩을 입은 닭 같았다. 우리집 밥상은 교회에서 받은 접이식 상이었다. 상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로 시작하는 성경 구절이 길게 적혀있었다. 뭉친 솜패딩을 입은 닭 밑에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하는 상이 얄미웠다.
친구집에서 먹어 본 바삭한 튀김옷과 달콤한 양념의 치킨이 떠올랐다. 엄마의 얼굴을 보며 차마 그 치킨이 먹고 싶다고 말할 순 없었다. 엄마는 치킨을 사서 먹으면 비싸기만 하고 건강에 안 좋다고 말했다. 똑같은 튀김 닭인데, 엄마가 만든건 건강식이고 치킨집에서 파는 치킨은 불량식품일리는 없을텐데, 엄마는 굳이 '건강을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엄마표 치킨은 치킨집에서 파는 것보다 생긴건 못생겼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는 납 냄새와 기름 냄새를 풍기며 닭을 뜯고 있었다. 엄마에게 '엄마 요리는 맛있다' 고 이야기 하면 엄마는 번들번들해진 얼굴로 미소 지었다.
뭉친 솜패딩 튀김옷에 탄 양념이 묻어있던 엄마표 치킨. 가끔씩은 어설픈 그 치킨이 먹고 싶다. CF를 보는 딸들의 눈빛을 보고 퇴근 후 시장에서 혼자 닭을 샀을 엄마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치킨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딸들을 위해 홀로 양념 레시피를 고민하고 지친 몸을 분주히 움직이던 엄마. 우리의 삶은 가난했지만 그 안에는 항상 엄마의 사랑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