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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12. 2021

내가 아빠가 없지, 용기가 없냐?

12살의 나에게

아빠가 죽고서 누구한테도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비밀이었다.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면 왜 죽었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아빠만 사라지고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았다. 잊고 있던 아빠의 부재는 다음 연도 학기초 가정환경조사서작성할 때에서야 깨달았다.


가정환경조사서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의 인적사항을 적는 칸이 있었다. 가족관계 내 '아버지' 라고 정해진 칸을 보며 아빠의 이름을 적을지 말지 고민했다. 아빠가 죽었어도 내 아빠인 건 변하지 않으니, 이름을 적어도 될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죽은 아빠의 이름 기입을 두고 고민한 이유는 아빠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친구들에게 아빠가 없다는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서였다.


'아빠의 이름을 썼다가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쩌지.'

'아빠가 왜 죽었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아빠가 죽었다고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지'

'아빠가 자살한걸 애들이 알따돌리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과 고민에 회색빛 갱지는 쥐고 있는 손을 따라 진한 회색이 되어 있었다. 오랜 고민 끝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에 솔직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인적사항에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제출한 건 12살에겐 큰 용기였다.


불행히도 나의 용기는 5학년 담임 선생님에 의해 짓밟혔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의 가정환경조사서 뭉터기를 지각생 몇몇에게 던지고는 컴퓨터에 정리하라고 시켰다.


반년 간 비밀로 삼았던 나의 비밀이 노출된 순간이었다. 몇 명이나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명이 알고 있다는 것은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나의 정보를 입력하면서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은 나를 찾아와 "너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나한테 잘해라"라고 말했다. 아빠가 없다는 건 약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문장으로 인식했다. 반년 간 사람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숨기고 싶었던 것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나 스스로도 약점이라고 여겼기 때문것이다. 


윤의 말에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아빠가 없는 것을 약점이라고 말하는 윤에게 화가 났다. 을 째려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꺼져"라고 말했다. 윤은 '어쭈 이게?'라는 표정으로 양 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었다. 나는 그대로 윤에게 달려가 윤의 손가락을 한 입에 넣어 물어뜯었다. 


반 아이들은 소리 지르며 말렸고, 나는 먹이를 문 맹수처럼 윤의 손이 잘리길 바라며 계속 깨물었다. 윤의 손에선 피가 났다. 담임 선생님이 다가와 나의 따귀를 찰싹 때리고 나서야 혈투는 끝났다.


4학년 때 수학적 재능이 있다고 담임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며 이쁨 받았었다. 선생님은 따로 불러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셨고, 수학 올림피아드 책을 사주기도 하셨다.


런데 내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용기를 냈을 때 새로 만난 5학년 담임 선생님은 날 싫어했다. 내 따귀를 때리며 지은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변의 소리에도 흐트러짐 없이 윤의 손을 부러뜨릴 듯이 깨물고 있는 나를 보며 동물 같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이날 이후 나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돈 없고 불우한 가정환경의  독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싸웠냐는 질문에 윤은 내가 손으로 욕을 했다고 했고, 나는 손가락 욕을 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나의 약점에 대해 선생님과 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가난한 편모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선생님과 자기 가족은 불사조라고 여긴 아이를 만나며 아빠 없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집이 돈 없고. 불우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희망 없는 아이 아니었다고.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한 정직한 아이였고, 아빠가 없는 것이 약점이라고 놀리는 친구에게 다가가 맞설 줄 아는 용감한 아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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