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가 없지, 용기가 없냐?
12살의 나에게
아빠가 죽고서 누구한테도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비밀이었다.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면 왜 죽었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더욱 아빠만 사라지고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았다. 잊고 있던 아빠의 부재는 다음 연도 학기초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할 때에서야 깨달았다.
가정환경조사서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의 인적사항을 적는 칸이 있었다. 가족관계 내 '아버지' 라고 정해진 칸을 보며 아빠의 이름을 적을지 말지 고민했다. 아빠가 죽었어도 내 아빠인 건 변하지 않으니, 이름을 적어도 될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죽은 아빠의 이름 기입을 두고 고민한 이유는 아빠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친구들에게 아빠가 없다는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서였다.
'아빠의 이름을 썼다가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쩌지.'
'아빠가 왜 죽었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아빠가 죽었다고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지'
'아빠가 자살한걸 애들이 알고 따돌리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과 고민에 회색빛 갱지는 쥐고 있는 손을 따라 진한 회색이 되어 있었다. 오랜 고민 끝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에 솔직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인적사항에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제출한 건 12살에겐 큰 용기였다.
불행히도 나의 용기는 5학년 담임 선생님에 의해 짓밟혔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의 가정환경조사서 뭉터기를 지각생 몇몇에게 던지고는 컴퓨터에 정리하라고 시켰다.
반년 간 비밀로 삼았던 나의 비밀이 노출된 순간이었다. 몇 명이나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명이 알고 있다는 것은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나의 정보를 입력하면서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은 나를 찾아와 "너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나한테 잘해라"라고 말했다. 아빠가 없다는 건 약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문장으로 인식했다. 반년 간 사람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숨기고 싶었던 것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나 스스로도 약점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윤의 말에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아빠가 없는 것을 약점이라고 말하는 윤에게 화가 났다. 윤을 째려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꺼져"라고 말했다. 윤은 '어쭈 이게?'라는 표정으로 양 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었다. 나는 그대로 윤에게 달려가 윤의 양 손가락을 한 입에 넣어 물어뜯었다.
반 아이들은 소리 지르며 말렸고, 나는 먹이를 문 맹수처럼 윤의 손이 잘리길 바라며 계속 깨물었다. 윤의 손에선 피가 났다. 담임 선생님이 다가와 나의 따귀를 찰싹 때리고 나서야 혈투는 끝났다.
4학년 때는 수학적 재능이 있다고 담임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며 이쁨도 받았었다. 선생님은 따로 불러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셨고, 수학 올림피아드 책을 사주기도 하셨다.
그런데 내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용기를 냈을 때 새로 만난 5학년 담임 선생님은 날 싫어했다. 내 따귀를 때리며 지은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주변의 소리에도 흐트러짐 없이 윤의 손을 부러뜨릴 듯이 깨물고 있는 나를 보며 동물 같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이날 이후 나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돈 없고 불우한 가정환경의 독한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싸웠냐는 질문에 윤은 내가 손으로 욕을 했다고 했고, 나는 손가락 욕을 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나의 약점에 대해 선생님과 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가난한 편모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선생님과 자기 가족은 불사조라고 여긴 아이를 만나며 아빠 없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집이 돈 없고. 불우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희망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한 정직한 아이였고, 아빠가 없는 것이 약점이라고 놀리는 친구에게 다가가 맞설 줄 아는 용감한 아이였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