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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19. 2021

세상엔 생각보다 우리랑 비슷한 사람이 많아

나는 내가 불쌍했다. 다시 태어나, 신께 축복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Reset은 없었고 Power Off  있었다. 


떨어지는 즉시 죽을 수 있을 옥상을 찾았다. 어중간한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져 고통과 치료비만 얻는 것은 남은 가족에게 몹쓸 짓이기 때문이. 떨리는 마음으로 높은 아파트를 찾아갔지만 옥상은 막혀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반지하 집으로 돌아갔다. 바퀴벌레와 곰팡이가 들끓는 곳. 사람들의 움직이는 발만 보아야 하는 곳. 그곳이 내가 사는 집이었다.


터칼을 손목에 가져다 댔다. 막상 내 손을 그으려니 두려웠다. 한번, 두 번 긁다 이내 포기했다. 용기도 없이 죽고 싶다 생각만 하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가 나의 첫 자살시도였다.


유튜브에서 '도마뱀 여드름 짜기'라는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나왔다. 이런 영상이 왜 추천됐는지 의아해하며 영상을 보았다.


"도마뱀 눈에는 돌멩이처럼 굳어버린 고름이 있는데요. 고름은 건조한 환경, 유전적 요인 등으로 탈피가 잘 되지 않아 생긴 거에요. 간단한 고름 같지만 제때 못 빼내면 도마뱀은 눈이 멀거나, 혈관이 막혀 쇼크사로 죽습니다. 도마뱀을 키우면 종종 발생하는 일이고, 반드시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영상을 보며 도마뱀의 눈에 생긴 고름이 나의 슬픔처럼 느껴졌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슬픔이 나의 몸에 우울로 자리 잡아 병이 되고, 내 생각이 멀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울증은 평범한 슬픔처럼 보이지만 방치하면 더욱 커지는, 잘못 처치하면 또 다른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병원에서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좋아지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다 더 악화되기도 한다.


우울증이면 병원을 가야 한다는 것은 둘째 언니를 보고 알았다. 대학생 때 집에 있는 'ㅇㅇ정신건강의학과, ㅇㅇ님 귀하'라고 쓰여있는 약봉지를 보고 기겁했다. 둘째 언니였다.


둘째 언니는 어릴 적부터 가장 아이 같았다. 나는 눈치 보며 김치를 열심히 먹었지만, 2살 터울인 언니는 '김치는 매워서 못 먹어'라고 했다가 아빠에게 맞곤 했다. 가족끼리 놀러 나가서 사진을 찍을 때도 혼자 '이곳이 좋아' 라며 생뚱맞은 돌덩이에 앉아 있다 혼나기도 했다. 유치원 버스에서 잠든 척하고 있는 나를 업고 집에 오기도 한 언니는 항상 순수했고, 여렸다. 그런 언니가 어느 순간부터 40살이 넘기 전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에 대해 기억 남는 게 뭐야?'라고 물어보면 엄마와 큰언니는 거의 잊었다고 한다. 그런데 둘째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언니가 말을 하지 않아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제 약을 안 먹고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한 번씩 '일찍 죽을 건데?'라고 말하는 걸 들으 진심 같아서 무섭다. 언니가 죽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무너질 것이다.


년 전 우울증이 심해서 계속 밤에 울었다. 부적합한 사람이고, 무가치한 사람이고,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외로웠다. 사람들이 날 버릴 수 있다는 공포로 매일 괴로웠다.


둘째 언니에게 마음이 힘들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후 언니는 매일 밤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울고 있다가 언니의 전화를 받을  울고 있던 것을 들킨 기분에 민망하고 부끄러워 퉁명스럽게 받았다. 그래도 언니는 끊지 않았다. 계속해서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나 진짜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다가도 언니의 계속되는 수다에 "아 짜증 나게 왜 자꾸 안 끊어!"언니에 대한 짜증으로 하루를 끝낸 적도 있었다.


지금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도 우리 참 잘 컸어 그치?" 라고 이야기를 하면 언니는 "우리가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렇지, 우리가 제일 불쌍한 건 아니야. 세상엔 생각보다 우리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라고 이야기해준다. 자기 연민과 자아도취를 해보려 했더니 언니가 초를 친다.  연민을 방해하는 언니가 고맙다. 작은언니랑 나도 우울증을 겪었을 땐 절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 죽고 싶었다. 그런데 평생 불행할 사람이라고 여겼던, 실제로 고난이 많았던 우리에게도 밤과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고 있었다.


언니는 여전히 "난 오래 안 살 건데? 빨리 죽을 건데?"라고 이야기한다. 언니의 말속에서 이전에 정해져 있던 40살이라는 구체적 나이가 사라졌음에 감사하다. 언니는 아마 오래오래 살 것이다. 언니는 조카인 하하 형제를 끔찍이도 사랑하니까.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는 도중에 절대 못 떠나지. 지금처럼 연예인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언니를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아직 해보지 못한 재밌는 것들도 즐기며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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