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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11. 2021

핸드메이드 가난

학교에 가기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기 싫었다.


중학교 입학 통지서가 나온 날 엄마이모는 내 교복비를 걱정다. 가난한 집 셋째 딸 나는 내가 아들이었으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조금 더 행복하고 경제적으로 나았을 거란 생각으로 슬펐다.


내가 태어난 날 할머니는 병원을 돌아다니며 대성통곡을 했고, 아빠는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 홀로 갓 태어난 핏덩이와 인사해야 했다. 엄마는 항상 나를 사랑했고, 단 한 번도 내게 아들이길 바랐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와 엄마에게 셋째도 딸이라서, 애가 셋이라서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은 가슴속에 상처로 오래 자리 잡았다.


엄마와 이모가 교복을 지 않고 만들어 준다고 했을 때 싫었지만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가난한 집의 셋째 딸이니까. 어차피 남은 선택지가 없을 테니까. 

엄마는 시장에서 학교 교복과 비슷한 줄무늬 와이셔츠와 원단을 구해왔다. 결혼 전까지 디자이너 어시스트 일을 했던 이모는 그 원단으로 내 사이즈에 맞춰 마이, 치마, 조끼를 만들었다. 


엄마와 이모는 파는 거보다 더 좋은 원단으로 만든 맞춤 교복이라고 했다. 기성복과 맞춤복의 개념을 몰랐던 나는 맞춤 교복에 대한 자부심은 없었고, 그저 성품교복 같아 보인다는 점에만 기뻐했다. 내 교복이 엄마와 이모의 합작품인 건 자랑이 아닌 비밀이었다.


학 후 친구들은 내 교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교복 브랜드는 브랜드마다의 특징으로 똑같이 찍어는데, 내 교복은 그 똑같음에서 벗어나 있었다. 어디 브랜드 교복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모가 만든 옷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싫고, 마땅히 대답할 교복 브랜드도 몰라 둘러댄 대답이었다.


친구들은 교복 브랜드별 특징을 설명하며 계속해서 교복 이야기를 다. 나는 쭈뼛거렸, 구들은 신난 목소리로 을 살 때 받은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랑했다. 그제야 브랜드가 아닌 교복은 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복과 친구들 교복은 같은 듯 달랐다. 학교의 대표 문양과 원단을 사용했으나 모양도, 색도, 줄무늬 간격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엄마랑 이모가 구하고 만들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친구들에게 화장실을 가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가난을 들키는 것이 두려웠다.


그날 이후 친구들은 내 교복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기습 질문에 대비해 혼자 무심한 톤과 표정으로 "맞춤 교복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연습해봤다. 연습한 대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새 학년이 되고 새 친구를 만났을 때 찾아왔다.


친구는 귀신같이 교복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교복은 좀 다르다는 친구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모른다고, 관심 없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어느 브랜드꺼냐고 물으며 마이 안에 있는 상표를  하자 친구의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도망갔다.


화장실에서 홀로 옷 안에 있는 마크를 확인했다. 교복는 'HAND MADE'라는 라벨이 있었다. 어린 나는 '직접 만든 옷인 걸 왜 드러냈? 차라리 아무 이름의 라벨이라도 붙여주지'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성인이 되어 백화점에서 울코트를 고르다 코트 소매 바깥 부착된 'HAND MADE'라는 라벨을 보았다. 점원에게  좋은데 라벨이 싫다며 라벨뗄 수 있냐고 묻자, 점원은 남들은 핸드메이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 굳이 왜 떼려 하냐고 궁금해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핸드 메이드, 맞춤복에 특별함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는다는 걸 알았다.


어린 내게 핸드메이드란 돈이 없어 돈 대신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었다는 인증이었다. 좋은 원단으로 내 몸에 맞춰 만든 교복라도 그 교복을 입게 된 근본에는 가난이 있었다.


'HAND MADE'라는 라벨 속 숨겨진 가난이란 진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HAND MADE' 라벨을 보고 거부했던 것은 라벨로도, 무심한 연기로도 감출 수 없는 마음속 깊게 뿌리 박힌 가난의 상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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