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정 Jun 02. 2021

행복이라 불리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는 것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수록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삼겹살과 소주 생각이 간절했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간편할 테지만 꼭 구워 먹어야만 하는 날이 있다. 그까짓 거 사다가 구워 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다. 우리 집에는 '반대파(집에서 고기 굽기 를 반대함)'가 존재한다. 게다가 그 반대파는 술도 즐기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술을 즐겨먹진 않아도 내가 마시고 싶다고 하면, 술을 사다 준다.


어제는 눈에 띄게 자란 새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미용실에 가서 뿌리 염색을 하고, 자주 이용하는 정육점에 들렸다. 목살, 삼겹살, 냉동삼겹살 가격을 보다가 간단히 먹자 싶어서 냉동삼겹살을 골랐다. 고기만 있으면 좀 아쉬우니 동네 마트에 들려 이름이 낯선 쌈을 사고, 할인 문구에 현혹되어 맥주를 5캔과 소주를 1병을 샀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과 아이는 문제집을 해결하느라 바빠 보였다.




가스레인지에 고기를 구울까 하다가 남편의 눈치를 살살 보며 고기 굽는 판을 꺼냈다. 남편은 못 이기는 척 앉아 고기를 굽는다. 지글지글 소리로 시작된 자극이 노릇노릇 시각으로 옮겨진다.


드디어 고기가 익었다!


남편이 잘 익은 고기를 집게로 들어 먼저 내 그릇에 하나, 반으로 자른 고기를 아이의 그릇에 하나 올려준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조그마한 술잔에 소주를 준비한다. 적당히 잘 구워진 삼겹살에 구운 김치를 올려 한입에 넣는다.


“아, 맛있다!”


남편과 아이가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둔다. 고기를 먹었으니, 소주도 한잔 털어 마신다. 남편은 소주 대신 자신이 그나마 좋아하는 흑맥주를 조금 잔에 채운다.


“와! 이거지! 행복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어떤 사람은 명품 가방을 사거나 비싼 음식을 먹을 때나 하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냉동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일이,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내게는 그럴 일이다. 이 행복은 거저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일들을 견뎌내고 있다.


아이는 쌈에 고기와 새우젓을 넣어 남편의 입에 넣어준다. 내가 어지간히 호들갑을 떨면서 먹어서인지 아이도 지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웃긴 말들을 내뱉는다.


어느새 불판과 헤어질 시간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주방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간다. 우리는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제거하고, 기름진 부분을 열심히 닦아낸다. 창문을 언제 열어놨는지 바람이 싸늘하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남편은 냉동고를 열어 아이스크림의 부재를 확인한다.


“사다 줘?”


아이와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 어느새 우리 손에는 빵빠레 아이스크림이 들려있다. 어제의 그 아이스크림을 나는, 행복이라 불리는 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편은 늘 그랬다. 지갑이 빵빵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을 빵빵하게 채운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사람과 살아가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부자로 살아가는 미래보다 다정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기대하며 결혼을 했고, 내가 느끼는 행복에는 늘 그가, 그가 느끼는 행복에는 늘 내가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 서로 부단히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는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더 큰 행복이 온다. 나는 그 행복이 좋다.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에 곁들이는 소주보다 더.









작가의 이전글 상처 받지 않고 어른이 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