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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y 29. 2021

상처 받지 않고 어른이 되는 방법

가슴에 와서 떠나지 않는 말


친정에 가면 아빠는 거의 99퍼센트의 확률로 취해 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도 나는, 일부러 친정에 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오래간만에 들려서 저녁이나 먹고 빨리 집에 와야지.'


그날은 내가 치킨을 주문했고, 아이는 그날따라 좀 정신없이 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는 아이에게 갑자기 언성을 높였고, 아이는 놀란 얼굴로 눈물을 쏟았다. 어디를 가든지 귀여움을 받다가 할아버지에게 매섭게 혼났으니 눈물이 날만도 했다. 이상한 건 내 기분이었다.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순해서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순하다. 그게  타고난 기질이었는지, 환경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지는 정확히   없다. 나는 어릴  자주 울었다. 아빠가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못이 아닌  같아도 따져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체로 가만히 아빠의 말을 듣고 있었고,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왜일까. 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였다. 단칸방이 날아갈 정도의 큰 목소리로 우리를 혼냈던, 아빠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나는 그 순간이 무서웠다. 뭐가 잘못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만은 선명히 기억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울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 누구도 나를 그렇게 혼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는 그때보다 많이 늙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사람처럼, 아빠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었다.






술에 취해 혀가 반쯤 꼬부라진 아빠가 말했다.


“그냥 둬. 울면서 자신이 왜 우는지 스스로 생각할 거야.”


나는 엄마가 준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아이가 누군가로 인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상처 받는 순간이 아팠기 때문이다. 아빠가 굳이 아이를 혼냈어야 했나 밉기도 했다. 아이가 충분히 혼날 만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아이니까 그저 감싸주기를 바랐다.


 '누가누굴 인터뷰'에서 악동뮤지션 이수현이 나와 아이들과의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다.


"너네들은 힘든 일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없을 거야. 너네들은 꽃길만 걸으렴."


그녀의 말은 진심이 가까웠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꽃길만 걸으면 꽃이 죽는데."


아이가 불쑥 내뱉은 말로 인해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길이 꽃길일 수는 없다. 누군가 꽃길만을 걸어왔다면 그 길은 부모가 만들어주었을 확률이 크다. 겪어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밟은 그 예쁜 길을 만들기 위해 내 부모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꽃길만 걸으라고 응원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생의 길에는 꽃길만 존재하지 않는다. 꽃길만 걷는 건 실제로 위험한 것이다. 자갈밭도 걸어봐야 꽃길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선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상처 받지 않고 어른이 되는 방법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이가 작은 상처를 받는 것에도 마음이 아렸다. 자식을 속으로 예뻐해야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평소 입을 열지 않는 아빠가 가끔 하는 말이 가슴에 와서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차마 물을 수 없어 나는 오늘도 아빠의 말을 되짚어 본다. 울고 난 아이의 얼굴은 세수를 한 듯 시원해 보였다. 그렇게 커야만 하는 운명인 것을 아는 얼굴처럼 아이는 어느새 미소를 지었다. 비 온 뒤 개인 하늘처럼 청량하고 밝은 미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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