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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05. 2021

저는 지금도 글을 씁니다.

모르는 이와 안부를 묻는다는 것


휴대폰 알림에 반가운 닉네임이 보였다. 석 달만이었다. 그 닉네임의 주인공은 작년 11월부터 2월 초까지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멤버였다. 컨셉진이라는 매거진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100일 동안 1일 1글쓰기를 실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100일 동안 90일 이상 인증하면 참가비는 100% 환급되고, 글쓰기 인증을 90% 이상 완료한 사람 중 한 명에게는 출판의 기회도 주어진다는 안내글을 읽다가 나는 얼떨결에 그 프로젝트를 신청했다. 술을 마시다가 판단이 살짝 고장 난 나는 평소와 다른 선택을 했다. 확신이 없는 일은 진즉에 시도조차 안 하는 나인데 그날은 달랐다. 뭐라도 해보고 싶은 의욕이 잠시 샘솟은 순간 나와 만난 그 광고 문구는 운명적이었다. 타이밍이 적절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 프로젝트를 신청해놓고도 취소할까 수없이 갈등했다. 술기운으로 얻은 동기부여라니, 어쩐지 순수하지는 못하지 않은가.



과연 내가 100일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정해진 분량이나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려울 것도 없겠다 싶다가도, 이걸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글쓰기를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우선 어수선한 집 앞마당처럼 방치된 블로그에 접속했다. 먼지를 털어내듯 블로그 카테고리를 정리하고, 걸레질을 하듯 깔끔한 형태로 정리했다. 최대한 편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블로그 링크를 복사해 글쓰기 인증을 남겼다. 자신이 낸 참가비 환급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인증을 며칠 안 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진 않는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내 글에 공감한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댓글을 써준 분이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진 나는 그분의 글을 읽었다. 그렇게 서로 댓글을 남기며, 나는 서서히 다른 이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이 모두,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고서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리가 만무하다. 이 공통점은 아마 브런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올라오는 익숙한 닉네임과 글들이 반가웠다. 서툴지만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글, 감정을 힘겹게 토해내서 쓴 글, 잘 정돈된 글, 인증을 위한 성의 없는 글, 많은 글들이 그곳에 존재했다.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나와 그들은 서로를 위로했으며 때로는 응원했다. 낯선 관계 속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매일 써나가는 글들처럼 쌓여갔다. 이름도 모르는 관계에서, 만날 일도 없는 관계에서, 오고 가는 감정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다.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늘 불편함을 느꼈던 나인데 그 공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에 상대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도 있고, 같은 꿈을 가졌기에 경쟁심이 먼저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글 쓰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글을 쓰지 못했던 날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있었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내 앞을 가로막던 뿌연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최종 출판 지원작 선정에서 떨어진 내가 아쉬운 마음에 찌질한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불과 반년 전에 쓴 글인데 퇴고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인지 정말 볼품없어 보인다.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멋진 장식장에 넣지 못해 아쉬워했던 내가 미워질 정도다. 그 당시에는 글의 상태 따위는 상관없었다 무조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글쓰기 멤버들의 투표도 심사에 반영되었는데 나를 뽑아준 사람들도 꽤 있어서 괜히 더 아쉬웠다.


지금은 아니다. 그로 인해 내 글쓰기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패해서 잘 됐다고 박수 칠 일도 아니지만 그때 잘 됐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었음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사이에 브런치 작가도 몇 번의 낙방 끝에 되었으니,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고 해두고 싶다.


그건 그렇고, 그 글쓰기 멤버가 남긴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때 출판 지원작에 지원했던 분들 중 한 분이 독립출판을 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분의 책을 발견해서 반가웠노라고 전해왔다. 모두들 잘 지내시길 바란다는 내용도 덧붙여서 말이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댓글을 남겼더니, 내게 ‘지 직가님’이라고 하며 안부 인사와 함께 이런 글을 남겨주었다.



그렇게 긴 겨울밤을
작가님 덕분에 잘 보내었어요.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꿈을 꾸는 힘은, 바로 그곳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족한 내가 다시 글을 써도 되나, 작가의 꿈을 꾸어도 되나,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글을 쓰면 얼굴도 모르는 이가 내게 ‘지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런 말을 들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때로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글을 쓰며 나는 알았다. 내가 여전히 글을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보름이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도 잠시, 이곳에 정착할 방법을 혼자 찾고 있다. 브런치 작가만 되면 금방 뭐라도 될 것 같은 착각에서도 벗어났으니, 다시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글에 ‘저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라고 댓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뒤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나와 그들을 응원했다.


긴 겨울밤 흔들리는 마음을
기꺼이 함께 읽어준 그대들이 있어
지금도 저는 글을 씁니다.


나는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둔다. 진심을 담아 그 순간들을 쓴다. 아무쪼록 모두들 잘 지내시길.




 


* 이미지 출처 

1. Pixabay로부터 입수된 Firmbee님의 이미지입니다. 

2.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ter Olexa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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