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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an 03. 2022

무엇이 되지 않은 날들의 뒷모습

낙하하는 기분

비 오는 날, 비가 올 것을 알면서도 우산 없이 걷다가 집에 돌아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울다가 잠이 든 사람의 기분, 젖은 옷이 마르지 않아 찝찝해서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않은 몸, 모든 소리들이 난잡스럽게 느껴져 불편한 표정, 어떤 날에는 그렇게 계속 낙하한다. 차가워진 마음이 낙하한 것들을 받아내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나간다.


생각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소멸된다. 어쩌면 완전한 소멸은 아니다. 생각을 채집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본다. 분명 그것들은 내 눈앞을 스친다. 그러나 손을 뻗으면 사라진다. 나는 우두커니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살아 있다.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도, 안에 있으면서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고 느낀다. 걷지 않고, 뛰지 않고, 말하지 않고도 나는 걷고, 뛰고, 말한다. 끝없이 사유하고, 예민하게 묻는다. 그렇다 해도 정확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한 대답이라는 것은 사실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사유는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서 사유를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이 되지 않은 기분은 한없이 낙하한다. 나 자신에게 잘해주면 버릇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꾸준히 스스로를 괴롭힌다. 모호한 상태로 많은 순간을 보낸다. 모호함을 선명하게 만들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힘내자!’라고 말하는 건 싫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내가 좀 후지게 느껴진다. 많은 것을 담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꾸 말을 삼킨다. 머뭇거린다. 그렇게 무엇이 되지 않은 날들의 뒷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본다.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 그 기분이 어떠냐고. 무례한 질문이라서 그런가. 나는 그런 기분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좀 더 내키지 않는 일들을 시도해 봐야 될 텐데, 실패를 더 경험해야 할 텐데, 비를 맞고 계속 걸어볼 것인지, 차가워진 마음을 좀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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